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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식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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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국의 첫 우주인 존 글렌은 1962년 프렌드십 7호에 사과소스를 싣고 갔다. 69년 인류 최초로 달 표면을 밟은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이 달에서 한 첫 식사 메뉴는 구운 칠면조 고기였다. 2001년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머문 이탈리아인 움베르토 귀도니와 캐나다인 크리스 해드필드는 파르메지아노 레지아노(파마산치즈 중 최상품)와 캐나다산 연어 등 호화로운 음식을 즐겼다. 한국의 첫 우주인 이소연씨는 김치·라면·밥·된장 등 평소 즐겼던 음식을 ‘우주 소풍’에 지참했다. 우주식품도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에서도 하루 세 끼를 먹는다. 남성에겐 보통 2200㎉, 여성에겐 2000㎉의 열량이 제공된다. 비타민·미네랄이 풍부한 메뉴가 선정되나 철분·나트륨은 적게, 비타민D는 충분히 섭취하도록 배려한다. 철분·나트륨을 과다 섭취하면 심장 질환·뼈 손실 등 건강 이상이 올 수 있으며 우주선 안에선 ‘선샤인 비타민’인 비타민D를 생성할 수 없어서다.

맛이나 식감은 떨어진다. 미국의 스페이스 박물관에선 68년 아폴로 7호에 탑승한 우주인이 즐겼던 우주 아이스크림을 판다. 어린이는 신기하고 달다며 좋아하지만 성인은 치아에 달라붙는다고 불평한다. 동결 건조한 식품의 숙명이다.

우주식품 제조 시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경량화다. 1㎏을 우주에 올리는 데 5000만원이 들기 때문이다. 우주식품을 동결 건조·분말화하는 것은 이래서다.

위생도 중요하다. 전력이 부족한 ISS 모듈엔 냉장고가 없어 식품을 오래 두고 먹기 힘들어서다. 요즘 최선의 식품안전 시스템으로 평가받고 있는 식품 위해요소 집중관리기준(HACCP)의 기원도 우주식품이다. 60년대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우주식품을 납품한 필스베리사가 식품 위해요소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개발했다. 우주인용 스테이크에 방사선을 쐬거나, 수분 함량을 최대한 낮추는 것은 식중독균을 죽이는 등 식품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방책이다.

우주식품은 미국과 러시아가 양분한다. 미국이 200가지, 러시아가 130가지의 식품·음료를 국제우주식품목록에 등록했다(푸드 테크놀로지 2008년 1월). 메뉴엔 별 차이가 없으나 포장재의 종류와 용기의 입구 부분이 다르다. 미국은 알루미늄 포일 등 빛이 통과하지 않는 포장재를, 러시아는 투명한 포장재를 쓴다. 미국산의 용기 입구는 LPG차의 가스 주입구, 러시아산은 휘발유차의 기름 주입구를 연상시킨다.

이씨가 ISS 모듈에서 먹을 우주라면 맛이 궁금하다. 우주란 새로운 공간이 주는 설렘에서라도, 언젠가 스위스 융프라우요흐에서 먹어본 컵라면처럼 기막히고 행복하지 않을까?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