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프리마 발레리나 ‘양 김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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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발레리나 김주원(31)과 김지영(30).

강수진(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뒤를 잇는 두 사람이 현재 한국 발레계에서 갖는 위치는 각별하다. 1990년대 후반 둘의 등장과 함께 순수 예술로만 머물던 발레에도 ‘스타 시스템’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해적’ ‘돈키호테’ 등 다양한 레퍼토리로 한국 발레의 르네상스가 만개할 수 있었던 것도 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나이는 한 살 차. 그러나 지영씨가 일찍 학교에 들어간 터에 둘은 친구다. 또한 팽팽한 라이벌이다. 그런 두 사람이 2005년 ‘해적’ 이후 3년 만에 다시 같은 작품에 출연한다.

바로 16일부터 국립극장에서 공연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누가 연기하는 줄리엣이 더욱 멋질지. 3년 만에 성사된 리턴매치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테크닉 vs 캐릭터

3년 새 둘의 지위는 확연히 달라졌다. 주원씨가 2006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이라는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했다면, 지영씨는 지난해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로 등극했다. ‘국내형’을 뛰어 넘어 세계적인 발레리나로 우뚝 선 것이다.

그러나 둘 간의 긴장감은 여전했다. 7일 각각 따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둘 간의 상대방에 대한 언급은 조심스러웠다. 가능한 한 말을 아꼈고, 설혹 얘기를 해도 좋은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주원씨가 “지영이한테 많이 배운다”며 기량을 높이 평가했다면, 지영씨는 “주원이는 흡입력이 강하다”고 맞장구치는 식이었다. 속내를 쉽사리 드러내지 않았지만 “라이벌 의식이 없다면 거짓말”(지영)이란 말도 했다.

한 국립발레단원은 “지금은 각각 다른 발레단에서 활동하는 터에 많이 약해졌지만, 2000년대 초반 같이 무대에 설 땐 둘은 물론, 파트너인 남자 무용수(이원국·김용걸)끼리도 서로 잘 얘기를 하지않을 만큼 신경전이 치열했다”고 전했다.

둘의 스타일은 확연히 다르다. 지영씨가 스피드·템포감 등 테크닉으로 승부를 거는 방식이라면 주원씨는 섬세한 동작과 정서적 표현에서 탁월하다. 이는 각자 자기 자신에 대한 분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지영씨는 “악센트를 주는 데 신경을 많이 쓴다. 톡톡 튀면서 탄력적인 무용을 하고 싶다”고 말했고, 주원씨는 “드라마가 있는 전막 발레를 원한다. 단순한 기량이 아닌, 스토리에 녹아 들어가 관객에게 감성을 전달하고 싶다”고 전했다. 지영씨가 고난도 회전력과 발랄함이 돋보이는 차이콥스키 파드되를 자주 무대에 선보이고, 주원씨가 곡선의 아름다움 속에 여인의 애절함을 담아낸 ‘해적’의 침실 신을 좋아하는 것에서도 둘은 상반된다.

#대담성 vs 안정형

지금은 최고의 위치에 올랐지만 둘 다 그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지영씨는 러시아 유학 중 공연을 보러온 어머니가 객석에서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신 아픔을 겪었다. 2002년 네덜란드 진출 이후엔 발목 부상으로 수술 받는 등 2년간 공백기를 맞기도 했다. 지영씨는 “부상 이후 간절함이 커진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주원씨는 신체 조건이 발레에 썩 좋은 편은 아니다. 그는 “다리도 굵고, 발등도 예쁜 모양이 안 나오며 팔은 지나치게 길다”고 말했다. 이를 그는 지독한 연습으로 극복하며, 악조건을 강점으로 탈바꿈시켰다. 최태지 국립발레단장은 “한 달에 토슈즈를 15번 갈아치울 만큼 열심이다. 안쓰러울 정도”라고 전했다.

무용평론가 장광열씨는 지영씨에 대해 “유럽 진출 이후 다양한 컨템포러리를 접하면서 음악적 해석력이 성장했다. 틀을 거부한 대담하고 거침없는 면이 매력”이라고 말했고, 주원씨에 대해선 “안무자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 안에서 정확하면서도 깊이있는 연기를 할 줄 안다”고 전했다.

이번 둘이 번갈아 공연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안무는 러시아의 거장 유리 그리가로비치(81)가 맡는다. 최근 사별한 자신의 아내이자 볼쇼이 발레단 프리마 발레리나였던 나탈리아 베스메르트노바를 위한 ‘헌정 공연’인 터에 더욱 소중한 무대다. 과연 누가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뽑아낼지, 둘의 불꽃 튀는 경쟁을 관객도 발레계도 기대하고 있다.

글=최민우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김지영

생년월일 1978년 7월 26일
1m64㎝, 45㎏
1997년 국립발레단 입단 (역대 최연소)
2007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등극

지영씨의 장점은 …

◇김주원=지영이는 다이내믹하다. 파워풀하면서 생동감이 넘친다. 체구가 크진 않지만 관객을 압도하는 무대 장악력과 카리스마는 도저히 내가 따라가기 힘들다. 테크니컬한 움직임으로 탄력 있는 점프, 회전력, 유연성 등으로 주위를 놀라게 한다. 배울 게 많은 친구다.

◇김주원

생년월일 1977년 5월 8일
1m65㎝, 46㎏
1998년 국립발레단 입단
2006년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무용수 수상

주원씨의 장점은 …

◇김지영=주원이는 그냥 봐도 너무 예쁘다. 무대에선 관객을 빨아들이는 것 같다. 단순히 외모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객석에 전달되기 때문 아닐까. 주원이를 생각하면 난 ‘백조의 호수’가 연상된다. 그만큼 우아하고 선이 곱다. ‘완벽한 상체 라인’은 너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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