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아르헤리치 내달 한국공연 이번엔 독주곡 연주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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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해 말 ‘아르헤리치 2000년 연주 녹음’이라는 제목의 음악 파일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쇼팽의 스케르초 3번과 프로코피예프 소나타 7번이었다.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67·사진)는 1980년대 이후 독주를 하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이 파일은 음악 애호가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녹음 상태는 지저분한 편이었고 출처도 정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르헤리치가 연주했다는 사실에는 의문을 품을 수 없었다. 폭발적이고 화난 듯한 피아노 소리가 연주자를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헤리치의 독주는 이처럼 뜨거운 이슈다. 지난해 4월 그가 내한했을 때도 가장 큰 관심사는 앙코르로 독주곡을 하는가였다. ‘아르헤리치와 친구들’이라는 제목의 이 실내악 공연에서 현악기, 혹은 또 다른 피아노와 함께 연주하는 작품만 올렸기 때문이다. 티켓 판매 6시간 만에 1100석을 매진시킨 청중들은 아르헤리치가 피아노 한 대를 가지고 뿜어내는 열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수차례의 커튼콜 끝에 그는 다시 한번 슈만의 피아노 5중주를 앙코르로 연주했을 뿐이다. 아르헤리치의 팬들은 독주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독주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혼자 무대에 서는 것이 외롭다” “가족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이유가 떠돌았지만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다.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고 연주 시작 직전에 이유없이 취소해버리기 일쑤인 아르헤리치는 홀연히 독주 무대에서 떠났다. 그는 이제 일본 벳푸, 스위스 베르비에·루가노 등의 음악 축제에서 다른 악기와 한데 어울려 연주하기를 즐기고 있다.

한때 “피아노에 갇히기 싫다”며 3년 동안 피아노를 떠나 뉴욕 집에서 TV만 봤을 정도로 자신의 세계가 분명한 그다. 80년 쇼팽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가 본선에 오르지 못하자 심사위원직에서 사퇴해버렸다. 2000년 부조니 콩쿠르에서도 임동혁이 5위에 그치자 심사위원직을 그만두고 그의 후원자를 자처했다. ‘피아노의 여제(女帝)’라는 별명은 의례적인 수식어가 아니다.

연주에도 성격이 묻어난다. 활활 타는 소리다. 94년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와의 내한 연주에서 피아노 줄을 끊어버린 일화는 유명하다. 함께 연주하는 사람들은 그 속도와 테크닉을 쫓아가지 못해 음을 놓치는 일도 많다. 음량을 줄이는 피아노의 왼쪽 페달을 관례보다 많이 사용하지만 빠른 손놀림과 자연스러운 음악 처리로 어색하지 않게 만드는 것도 특징이다.

아르헤리치가 1994, 2007년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을 찾는다. 지휘자 정명훈, 서울시향과 함께하는 협연 무대다.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국내 무대는 처음이다. 정명훈과 수차례 함께 연주한 인연 때문에 한국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자신의 주특기로 불리는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3번을 선택했다.

피아니스트 김주영씨는 “러시아 태생인 프로코피예프의 작품에서 남미 출신의 또 다른 열정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독주에 대한 팬들의 열망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5월 7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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