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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한 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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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금의 중국 산시(山西)성 융지(永濟)라는 곳에는 관작루(鸛雀樓)라는 정자가 있다. 예전의 것은 허물어져 그 자취가 없어졌으나 2002년 중국 당국이 다시 지었다. 그 이름만 전해져 왔던 것이라 옛 모양 그대로 살릴 수는 없었으리라.

관작루는 동남쪽으로 높지 않은 산이 있고 거센 황허(黃河)의 물길이 급히 꺾여 돌아나가는 지점에 있다. 빼어난 경치 때문에 역대의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다. 그중에서도 당(唐)대의 시인 왕지환(王之渙)이 지은 ‘관작루에 오르며(登鸛雀樓)’라는 시는 시간의 흐름에 구애됨이 없이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애송하는 절창이다. 그는 누각에 올라 이렇게 읊는다.

“해는 뉘엿뉘엿 산으로 내려 잠기고/ 황하의 물은 바다로 달려간다/ 천리 밖을 내다보고자/ 한 층을 더 오른다(白日依山盡, 黃河入海流, 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해가 지는 모습은 먼 경치다. 먼 곳에 우선 머물렀던 시선은 정자의 바로 앞인 황허의 물길로 옮겨간다. 가까운 경치다.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시선이 이동하면서 크나큰 대지의 크기를 느끼게 한다. 해가 내려앉는 궤적은 종적(縱的)이다. 이에 비해 황허의 흐르는 물길은 평면적이면서 횡적(橫的)인 이동이다. 종과 횡의 구도가 자연스레 다가온다.

시간의 흐름도 느껴진다. 지는 해의 일상성과 영원성, 물길의 흐름이 지닌 영속성이다. 경물을 읊었지만 하늘과 땅, 그리고 대자연 속에 묻혀 있는 사람의 존재감이 다가온다. 다음 구절이 더 무릎을 치게 한다.

‘천리목(千里目)’을 다 하고자 걸음을 옮겨 한 층을 더 오른다-. 앞의 두 구절을 외우는 사람은 적어도 이 부분을 아는 사람은 많다. 어떤 상황에 처해 있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 발전을 꾀하려는 사람에게 이 구절을 적어 격려하기도 한다.

그 마음이 가상하다. 더 먼 곳을 내다보기 위해 걸음을 떼려는 의지가 소중한 것이다. 실제 더 나은 경치를 보려고 한 층을 더 오른다고 고지식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더 먼 경계로 자신을 확장하기 위한 인간의 진지한 노력으로 보면 된다.

한국이 드디어 우주인을 넓디넓은 별들의 공간으로 올렸다. 우주인을 만들어낸 순위로 따지면 전 세계 국가 가운데 서른여섯째다. 경제력으로 본 국력의 크기가 2006년 국내총생산액(GDP) 기준 세계 10위인 한국의 위상을 감안하면 때늦은 감이 있다.

비록 그렇더라도 그동안 뭘 했는가라고 자탄할 필요는 없다. 더 멀리 내다보기 위해 한 걸음 옮겨 자신을 넓히고자 하는 마음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더 소중하다. 우주를 향한 이 첫 걸음이 부디 한국인의 심성과 시야를 무한의 공간으로 확장하는 계기로 작용하면 좋겠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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