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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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강한 정신을 만나면 그에게로 판단의 축이 이동해버려 나는 잠시 바보가 된다.그리고 그 강한 정신이 답을 주기만을 기다리며그에게 의존하게 된다.정신의 만유인력이다.그러나 정답은 밖에서주어지지 않는다.내 안에서 찾아야 명확한 나의 해답을 얻을 수있다.평범한 삶이 가치롭고 의미있는 삶이란 것에 대한 생각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해왔던 것이 아닌가! 고귀하고 가치로운 삶이란 가정을 소중히 하며 일상에 충실하는 삶이다.채영과 가정을 이루고 일탈하지 않으면서 내 삶 을 풍요롭게 가꾸는 것이다.가정이란 생명을 가꾸는 곳이다.가정을 소중히 지키는 이는 생명을,세계를,영혼을 소중하게 가꾸고 지키는 자이다.만족스럽게 의자에 등을 기대는 민우의 눈에 좌석에서 굴러다니는 신문 한 장이들어왔다.그 신문에 는 삼풍백화점 사건에 대한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민우는 그 신문을 집어들고 내용을 보았다.백화점 붕괴사건으로 죽은 사람은 4백50명이 넘었고 부상자,실종자까지 합한다면 가위 천여명이 넘었다.
『엄청나군! 이런 사회에서 평범하게 살 수 있을까?』 채영이침울하게 말했다.
『내가 외국에서 만난 우리 교포들 중에는 이런 현실을 피해 달아난 사람들이 꽤 있었어요.』 『피한다고 해결되진 않을 거야.피하기 시작하면 끝없이 피하면서만 살아야 할테니까….』 『이런 사건이 왜 자꾸 일어나는 걸까요?』 『결국은 정치인들 잘못이야.그들이 우리 사회에 병적인 권위주의 문화를 양산했으니까…정치인들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권을 잡으면 그들은 자기뜻이나 경륜을 펴기보다는 권력을 누리기에 급급했어.천민 권력이지.정치의 진정한 보람은 자기 뜻을 만인에게 실현하는데 있는데그네들은 남의 위에서 군림하는데서 만족과 보람을 찾았지.나는 가끔 우리 정치 현실을 보면 「쿠오 바디스」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나.』 『마지막 장면이라면…?』 『시를 짓겠다고 로마를 불지른 네로에게 분노한 군중들이 단죄하겠다고 득달같이 몰려드는 장면이지.우리 정치판은 워낙 엉망진창,파렴치한 놀음들을 하고 있기에 그 압제와 모욕에 시달리는 국민들의 분노는 거의 극에 달했어.표면화되지 않았 다 뿐이지.그러니 로마를 불태우는 것같은 사건이 일어난다면 국민들은 아마 총궐기해 파렴치한 정치가들을 모조리 때려죽일지도 몰라.삼풍이나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까지는 국민들이 참았지만 그 이상의 사건이 또 일어난다면 국민들은정치가들을 용서하지 않을 거야.혁명 한번 일으켜 보지 못한 순진한 국민이라고 아무렇게 대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정치가들은 그파렴치에 대한 대가를 자기 뿐만이 아니라 대대손손이 치러야 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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