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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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제2부 불타는 바다 운명의 발소리(4) 『왜 이래,남의 말을듣지도 않고.』 길남이 웃으며 지상의 어깨를 쳤다.
『사실은 할 얘기가 있어서… 널 찾았어.』 『무슨 얘긴지는 모르지만 일부러 여기까지 올 건 없잖어.사람들 눈에도 보기 좋은 꼴이 아니고.』 『저쪽 공사장에 가다가 공습경보를 만나서 숨었던 길이다.마침 며칠 못 봤기에 널 찾았던 거고.』 『자네가 날 찾아야 할 일이 뭔지 모르겠군.』 『내가 이러고 다니는게 마음에 안 들어서 하는 소린지는 알지만 말에까지 가시를 넣고 그러지 말아.』 『그래,무슨 얘긴데?』 흙더미가 쌓여 있는산비탈을 내려다보면서 길남이 들고 있던 모자를 썼다.
『나랑 같이 밖의 일을 좀 보지 않을래? 육손이 아저씨한테는사람을 하나 더 쓰겠다고 허락을 받았다.』 지상은 말없이 계곡을 내려다보았다.
『생각은 고맙지만… 여기 그냥 있는 게 편하다.』 『무슨 고집이냐,그건.』 지상이 길남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보다 내가 하나 부탁을 하자.시라가와 말이다.인부들 사이에 아주 평판이 나쁘다.그 사람을 지금처럼 내버려 뒀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미리 손을 써 두는 게 좋을 거다.』 『하여튼 저녁에 좀 만나자.』 땅굴 공사장으로 들어가는 지상의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길남은 발길을 돌렸다.저 친구가 속이 깊어보인다면서 육손이 아저씨도 밑에 데리고 있고 싶어 하는데,뭔가제딴에 단단히 맘 먹은 게 있는 거 같애.모자를 쓰고 길남은 숲길을 걸어 내려왔다.
공사장이 안 보이게 되었을 때였다.마치 자신을 덮치기라도 하듯 불쑥 앞을 막아서는 사람이 있었다.엉겁결에 나무 뒤로 몸을숨기려는 그에게 사내가 한발 다가서면서 말했다.
『나다,길남아.』 길남이 눈을 부릅뜨며 사내를 바라보았다.
『나다.모르겠나? 탄광에서 같이 일하던….』 『아니,너!』 앞으로 나서면서 길남이 그의 남루한 옷자락을 잡았다.머리에 수건을 동인 그는 바로 탄광에서 도망쳐 나온 진규였다.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길남이 진규를 숲속으로 잡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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