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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칼럼>고아원시설보다 입양절차 간소화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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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내가 테레사 수녀를 처음 만난 것은 도시 빈민가나 인도의 산간벽지 마을이 아닌 워싱턴 시내 호텔의 화려한 연회장에서였다.
94년2월 한 조찬기도회에 테레사 수녀는 낙태반대 연설을 하기위해 참석했다.연설이 끝난후 나는 그녀와 담소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테레사 수녀는 인도 뉴델리와 캘커타에서 그녀가 운영중인 고아원에 관해 얘기하면서 미국의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워싱턴에 그와 비슷한 고아원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나는 테레사 수녀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을 표시했다.우 린 수십만명에 달하는 미국의 버려진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화목한가정을 찾아줄 수 있을까 하고 오랜시간 대화를 나눴다.
1년후 나와 딸 첼시아는 뉴델리에 있는 고아원 「마더 테레사의 집」을 방문했다.그곳은 협소했고 화장실등 각종 시설은 태부족이었다.만약 미국에서라면 그런 고아원은 시설검사를 통과하지 못했을게 뻔하다.하지만 열악한 시설속에서도 어여쁘 기 그지없는수십명의 아이들이 입양을 기다리며 사랑속에 키워지고 있었다.
미국으로 돌아와서도 「마더 테레사의 집」이 내게 던져준 강렬한 인상은 그대로 남아있었다.인도에서 직접 목격한 테레사 수녀의 고결한 뜻을 워싱턴에서도 실현시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내가 막상 그녀를 도우려하자 엄청나게 많은 행정적 문제들이 걸림돌로 작용했다.역설적이지만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많은 규제들은 종종 아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사랑과관심을 간과하는 우(愚)를 범한다.
결국 지난 6월 어느 무덥던 날 워싱턴 근교 고급 주택가에 고아들을 위한 「마더 테레사의 집」의 문을 열었다.뒤뜰에 수영장까지 딸린 튜더 양식으로 지은 멋진 2층집이었다.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한 독지가에 의해 기증된 이 집이 문을 열던 날 테레사 수녀는 마냥 기쁘고 들뜬 모습으로 나를 이곳저곳 안내했다.테레사 수녀는 내 손을 이끌고 밝은 색칠을 한 침대와 유모차,그리고 장난감으로 채워진 방들을 데리고 다녔다.
비록 한번에 8명의 어린이만 수용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지만이 집은 미국인들에게 입양이라는 중대한 문제를 일깨워준 소중한계기가 됐다.
우리는 이 고아원의 방에 몇개의 침대가 놓일지를 걱정하기보다는 이곳에서 자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진정으로 자신들을 사랑해줄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에 마음써야 한다.낙태문제로 언성을높이는데 시간을 보낼게 아니라 입양을 활성화하는 데 정력을 쏟아야 한다.
현재 미국엔 약 45만명의 어린이들이 입양의 손길을 기다리고있다.또 수십만명의 부모들이 입양을 원하고 있다.그러나 복잡한규제와 시대착오적 논리,경직된 법조항들이 이들 어린이와 양부모들의 만남을 방해하고 있다.
내게 최근 편지를 보낸 한 여인의 경우처럼 어떤 사람들에겐 입양에 있어 비용이 가장 큰 문제가 되는 듯하다.음악가인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6년전 한 남자아이를 입양하는 데 수천달러를들여야만 했다.그녀는 『아이의 존재는 우리에게 삶의 기쁨 그 자체』라고 말한다.
올해 18세된 그녀의 조카딸이 임신했지만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없다고 하자 이들은 기꺼이 그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친척인 조카의 아이를 입양하는데도 법정 비용.서류작성등으로 4천달러를 썼다.
사람들이 입양을 꺼리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내가 최근 뉴 멕시코州에서 만난 40세의 한 뉴스캐스터는 입양에 관심이 있지만나중에 친부모들이 양육권을 주장하고 나설 것을 우려한다고 털어놓았다.흔한 일은 아니지만 친자식처럼 정붙여 키 워온 아이의 생부.생모가 뒤늦게 나타나 권리주장을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입양제도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입양이 어려운 또하나의 이유는 인종간 입양에 대한 거리낌이다.자신들과 같은 피부색의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완벽하다면 동일한 문화와 피부색을 공유한 부모와 아이가 딱 맞아떨어져 서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많은 소수인종의 어린이들이 입양과정에서 소외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가 이런저런 입양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뭔가 극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앞으로 5년동안 해마다 10만명의 어린이들에게 행복한 가정을 찾아준다면 어떨까.그러기 위해 우리는 입양절차를 용이하게 만들어야 한다.법 적 수속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
우리는 테레사 수녀가 몸소 실천한 진리를 따를 필요가 있다.
입양을 원하는 부모들이 간직한 사랑은 돈이나 각종 규제.피부색 따위의 문제를 극복하고도 남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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