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와 객석] 연극 리뷰 '남자충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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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남자충동'은 오랜만에 맛보는 진수성찬이다.배우들은 '십인십색(十人十色)'. 주연뿐 아니라 조연들의 연기도 감칠맛이 넘친다.

7년 전 대학로를 강타했던 연극'남자충동'의 감흥은 두 마디로 요약된다. 바로 '충격'과 '압도'다.

지난 12일 다시 막이 오른 '남자충동'은 여전히 매혹적이었다. 흠 잡을 데 없는 구성, 유머를 타고 흐르는 줄거리, 객석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는 시종일관 관객의 심장을 겨누었다.

'남자충동'은 깡패 이장정의 이야기다. '패밀리'를 지키기 위해 휘두르는 폭력에 조직도, 가족도 무너지고 만다. 이 작품은 '남자는 이래야 한다''가장은 저래야 한다'는 식의 사회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일종의 '테러'다. '나는 누구인가''남자는 누구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꽤나 묵직한 주제지만 풀어가는 방식은 흥미진진하다.

메인 요리는 역시 안석환이다. 그는 목포 깡패 이장정을 '광기'와 '히죽거림'의 이중주로 불러냈다. 특히 단단을 덮치는 대목과 칼에 맞아 숨을 거두는 마지막 독백 장면에선 안광(眼光)이 번득일 정도였다. 객석에선 '오싹!'하고 소름이 끼쳤다.

'남자충동'은 간만에 맛보는 '진수성찬'이었다. 모든 요리에 젓가락을 들이대고 싶었다. 주연은 물론 조연들까지 '그들만의 맛'이 났다. 흉내낼 수 없는 양념 맛이 깊숙이 배어 있었다.

황정민(장정의 어머니역)은 '된장찌개'였다. "으미 추잡시려! 저것들도 붕알달린 사내라고 심자랑이여, 심자랑이…"하며 내뱉는 대사에는 삶의 고단함이 억척스럽게 배어났다. "진짜 시장통 아줌마 같애"라는 관객들의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또 영화 '올드보이'에서 유지태를 감시하는 배역으로 얼굴이 꽤 알려진 오달수(달수역)는 '홍어회'였다. 흐느적거리는 몸짓과 특유의 능청스러움에 관객은 배꼽을 잡았다. 물론 이면에는 오랫동안 연극판에서 뼈를 깎으며 삭여 온 자신감이 버티고 있기에 가능한 연기였다.

'남자충동'을 보고 나오는 관객들은 저마다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머이매 멋져~어, 가이내 이뻐~어." 장정의 여동생이자 자폐아인 달래가 부르는 노래였다. 맑은 영혼의 달래역을 맡은 이유정은 청아하면서도 귀기(鬼氣)서린 목청으로 관객의 폐부를 갈랐다. 비극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극의 종점을 가리키며 '깃발'처럼 펄럭이던 노래였다.

1막이 끝난 뒤 휴식 시간에는 '깜짝 선물'도 던졌다. 관객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이유정이 '목포의 눈물'을 불렀다. 3절까지 이어지는 절창에 객석은 또 한번 들썩였다.

이외에도 게이역을 맡아 내면의 여성성을 섬세하게 끌어올린 김재만(단단역)과 이남희(유정역)의 맛깔스러운 연기도 관객의 눈길을 앗을 만했다.

'남자충동'은 무성한 소문만큼 먹을 것도 많은 잔치였다. 배우들의 연기는 그야말로 '십인십색(十人十色)'이었다. 어떤 반찬을 집어 들어도 입 안을 톡 쏘는 향내가 났다. 골라 먹는 재미가 각별했다.

뿐만 아니다. 목포 사투리로 풀어가는 대본은 생동감이 넘쳤고, 힘 조절을 아는 연출은 그지없이 치밀했다.'허세'와 '궁색함'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깡패(남자)들의 모습을 예리하게 뽑아냈다.

조광화 연출가는 "자신의 본래 모습대로 살지 못하고, 사회에서 강요하는 남성상에 끌려 다니는 남자의 허상을 그리고 싶었다"며 "'남자충동'은 기본적으로 남자에 대한 풍자"라고 말했다. 4월 18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02-764-8760.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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