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뒤덮인 漁場엔 한숨만-麗川郡 오염현장 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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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문전옥답(門前沃畓)같은 바다가 이 지경이 됐으니 할말을 잊었습니다.그저 앞으로 살길이 막막할 따름입니다.』 「시 프린스」호 좌초로 발생한 벙커C유 유출사고로 생활터전을 잃어버린 전남여천군남면일대 어민들은 그저 넋을 잃고 있었다.다도해 해상국립공원내에 위치해 전국에서도 이름난 청정해역인 이 일대는 한마디로 시커먼「죽음의 바다」로 변해 있 었다.
26일 낮12시쯤 전남여천군남면 장지부락.시 프린스호가 좌초된 지점으로부터 10㎞쯤 떨어진 이 마을 어민들은 삼삼오오 선착장과 해안가에 모여 물밀듯이 밀어닥치는 기름띠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름이 계속 밀려와 바다에 나갈 수 없는 상태입니다.
』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기 위해 어장에 나가봐야 하지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주민 정용화(鄭容化.43)씨는 한숨을 쉬며 어장손질을 못하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곳 장지부락은 우럭.볼락.농어를 주종으로 하는 해상 가두리양식장 82조(1㏊,1組는 가로.세로 5~10m의 양식시설)를비롯,전복.해삼.성게와 미역.톳.김이 함께 형성된 1종 공동어장 40㏊,홍합양식장 7㏊로 생계를 꾸려오고 있다 .
지난해 이 마을에서 거둔 어민소득은 3억원대.물론 정확한 총소득이 산출되지않은 어민 개인별 가두리 양식장의 소득을 뺀 것이다.선착장을 중심으로 마을 지선을 이룬 3㎞의 해안은 매년 이맘때쯤이면 방학을 맞은 동네 개구장이들이 물장구 를 칠 놀이터였으나 24일오전부터 밀려든 기름이 아스팔트 바닥을 연상케할정도로 뒤덮였다.
『조상대대로 모든 생계수단을 어장에 목을 걸고있는 부락민들이었는데 하늘이 무너진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마을 어촌계장배인환(裵寅煥.39)씨는 겨우 살아있는 치어들도 조만간 모두 폐사할 전망이라며,앞으로 수년간 어장형성이 안되기 때문에「무형의 재산」까지 포함하면 수십억원대의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마을 여기저기 해안에는 또 벙커C유 가 덮쳐 폐사된 가두리 양식시설 10여조가 자갈밭에 나뒹굴어 기름에 오염된 어장의 현실을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한마디로 장지부락 1백가구 주민 4백80명의 생활터전이 졸지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날 오후1시,임대한 쾌속보트로 또 다른 오염현장을 찾아간 곳은 남면안도리 서고지부락.
사고해역에서 8㎞쯤 떨어진 이곳 선착장에서 만난 어민 최대연(崔大連.70)씨는 상.하의 작업복이 온통 기름에 젖은채 방금황폐한 가두리 양식장에서 돌아왔다고 했다.
崔씨는『1년동안「자식」처럼 키워낸 우럭.볼락.돔등 성어(成魚)를 다가오는 추석대목에 팔아 빚이라도 갚을 예정이었는데 완전히 망쳤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또 어민 박춘식(朴春植.50)씨는『섬마을에서 전세사는 사람 봤느냐』며『모든 재산을 가두리 양식장 17조에 쏟았으나 이젠 길바다에 나앉아야할 판』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麗川=具斗勳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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