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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곳지금은>대한 매일신보 사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구한말 민족자주 항일 논조를 견지한 대표적인 신문중 하나가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新報)였다.
대한제국 말기인 1904년7월 서울 전동(現 행촌동)에서「런던 데일리뉴스」극동특파원이었던 영국인 베델(한국명 裵設)이 발행인겸 편집인을,우강(雩岡) 양기탁(梁起鐸)선생이 총무를 맡아창간한 이 신문은 국한문판과 영문판을 발간하다 1907년5월부터는 순한글판 대한매일신문까지 3개 신문을 펴냈다.영국인 베델을 발행인으로 내세운 것은 일제가 대한제국의 민간신문에 대해 시행한 사전검열제를 회피하기 위한 방안이었다.창간 당시 필진은주필 박은식(朴殷植)선생을 비롯, 단재 신채호(申采浩).최익(崔益).장달선(張達善)선생등 애국지사로 짜였다.
창간초기 일제통감부는 매수와 회유작전으로 대한매일신문을 통제하려다 뜻대로 안되자 1908년 발행인 베델을 반란선동혐의로 기소하고 양기탁선생은 국채보상의연금 횡령죄를 뒤집어씌워 구속하기도 했다.이같은 일제탄압으로 신문의 판권은 베델 의 비서였던만햄에게 넘어간뒤 1910년에는 다시 前사원이었던 이장훈에게 넘겨졌고 한일합방 직후 종간되고 말았다.
이후 일제는 대한매일신보를 매일신보라는 제호로 속간했으며 이때부터 조국의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민족지는 일제침략의 기관지로전락하는 비운을 겪는다.
대한매일신보 사옥은 붉은 벽돌과 흰색 화강암을 조화시켜 쌓아올린 건평 1백89평의 2층 양옥으로 창간해인 1904년 現위치인 서울종로구행촌동1의88에 신축됐다.일제하에서 통감부 소유로 넘어갔던 사옥은 해방후 자유당시절 국회 원내 총무를 지낸 趙모씨 소유였다.그러나 5.16직후 趙씨가 부정축재자로 재산을몰수당하면서 이 사옥은 국가소유가 됐다.
이 사옥은 현재 25가구가 내부를 연립형태로 개조해 살고 있어 외관 일부만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광복 50주년을 맞아 8월15일 이곳에 광복관련 유적지 기념비를 세우고 거주자들을 이주시킨뒤 건물의 원형을복원,인근 베델의 고택(古宅)과 함께 광복.베델관련 자료전시관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金龍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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