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여행>籌備-요모조모 꾀하여 갖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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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몇년전 신문지상에 「주비」(籌備)라는 용어가 등장했을 때 많은 독자들이 「준비」(準備)의 오기(誤記)가 아니냐고 문의했던적이 있었다.한자를 병기하지 않은 탓이다.
籌는 「수명(壽)을 판별하는 대나무(竹)」로 옛날 점(占)과관계가 있다.초기에는 거북 껍질을 불에 달군 송곳으로 뚫어 나타나는 금으로 길흉(吉凶)을 점쳤는데 이것이 점(卜)또는 점복(占卜)임은 이미 설명한 바 있다(「龜鑑」「占卜 」참고).
그러다 후에 오면 풀이나 대나무를 사용했는데 각기 시초(蓍草)와 籌라고 했다.그러니까 籌는 점을 쳤던 길게 자른 대나무라는 뜻이 된다.후에 셈하는 데도 사용돼 「산 가지」라고도 하는데 지금도 점쟁이들이 산통(算筒)에 산가지를 넣어 점을 치곤 한다. 점을 보든, 셈을 하든 「헤아리는 것」은 같다.그래서 籌는 「헤아리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주책(籌策.생각해본 끝에 나온 꾀나 책략),주판(籌板.珠板이라고도 함)이 있다.
備는 사람()이 무기고()를 지키고 있는 모습으로 침략이나 약탈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따라서 「준비」「대비」「갖추다」는 뜻을 갖게 됐다.비망록(備忘錄),비품(備品),경비(警備),방비(防備)가 있다.
곧 籌備라면 「요모조모 꾀하여 갖춘다」는 뜻이다.여기에는 심사숙고(深思熟考)가 개입돼 있음을 알 수 있다.곧 어떤 일을 꾀함에 있어 깊은 계획과 논의(論議)를 하면서 준비(準備)가 함께 이뤄지고 있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단순히 어떤 것을 「미리 마련해 갖추어 놓는다」는 뜻의 準備와는 엄연히 구별되는 것을 알 수 있다.
鄭 錫 元 〈한양大 중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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