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못 쓴 ‘8중 경호’ … 성화 가는 길 험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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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 7일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이 시작됐으나 시위대 때문에 성화가 네 차례나 꺼졌다. 성화를 봉송하던 여성 주자(오른쪽에서 둘째)가 불이 꺼진 성화를 난감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파리 AP=연합뉴스]

런던에 이어 파리에서도 베이징 올림픽 성화가 봉송 도중 심각한 수난을 겪었다.

성화는 7일 낮 12시30분 에펠탑 앞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첫째 주자 스테판 디아가나가 성화를 들고 에펠탑에서 내려와서 인근 차도로 달려나가자 시위대가 “와” 하는 함성을 지르며 다가섰다. 시위대와 몸싸움을 벌이던 경찰은 안전을 우려해 성화를 끈 뒤 주자와 함께 버스에 태워 날랐다. 비상용 성화로 원래 성화에 불을 붙인 뒤 파리 외곽에서 다시 봉송이 시도됐다. 그러나 둘째 주자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 선수가 출발한 지 얼마 못 돼 또 안전 문제가 불거졌다. 경찰은 성화를 끄고 또 버스로 날랐다. 이날 성화는 국회의사당 이후 종착지인 샤를레티 경기장까지 쭉 버스로 옮겨졌다.

AP 통신은 “이날 오후 5시(현지시간) 현재 성화가 총 네 차례 꺼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프랑스 경찰은 “올림픽 성화 자체는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는 절대 꺼지지 않는다”며 “램프 안에서 켜져 있었다”고 밝혔다.

프랑스 경찰은 병력 4000여 명을 동원해 ‘인의 장벽’을 만들었지만 곳곳에서 시위대가 성화 행렬 앞을 가로막는 바람에 봉송에 차질을 빚었다. 당초 봉송 구간인 28㎞를 4시간30분 동안 지날 예정이었으나 구간의 절반 지점도 안 되는 샹젤리제를 지나는 데만 3시간이 소요됐다.

현지 티베트인과 ‘국경없는 기자회’ ‘프랑스-티베트 친선협회’ 등 인권단체 회원들은 티베트기와 ‘티베트에 자유를’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성화 행렬을 따라 함께 뛰며 구호를 외쳤다. 이 과정에서 100m에 한 번꼴로 시위대가 차도로 뛰어드는 바람에 성화 행렬은 여러 번 멈춰 섰다. 이에 맞서 중국 젊은이 1000여 명이 “베이징 올림픽” 등의 구호를 외치며 오성홍기를 들고 뛰어다녀 인권단체 회원들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에펠탑 앞에서는 티베트기와 오성홍기로 갈린 양측 시위대가 함성을 지르면서 대치해 긴장감이 돌기도 했다. 길가에 나온 파리 시민들은 박수를 하며 티베트 시위대를 격려했다.

성화 봉송 주자로는 프랑스 육상 스타 마리 조세 페렉, 포르투갈 출신 축구 선수 페드로 미구엘 파울레타 등이 나섰다. 페렉과 유도선수 테디 리네 등은 중국의 티베트 인권 탄압에 반대하는 뜻의 배지를 달기도 했다.

올림픽 성화는 하루 전인 6일 런던에서도 수난을 겪었다. 성화가 런던 시내 48㎞ 구간에서 봉송되던 도중 시위대 한 명이 성화를 빼앗으려 했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소화기를 사용해 불을 꺼뜨리려 했다. 이 과정에서 영국 경찰이 시위대 37명을 체포했다.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채화된 성화는 130일 동안 총 13만7000㎞ 구간에서 봉송된 뒤 올림픽 개최지인 베이징으로 향하게 된다.

BBC에 따르면 올림픽 성화가 폐회식 전에 꺼진 것은 지금까지 두 번이었다.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여름 올림픽 때 대회 시작 후 며칠 뒤 강한 바람에 성화가 꺼졌다. 2004년 그리스 아테네 여름 올림픽 때도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에서 세계 각국으로 성화 봉송을 시작하려는 찰나에 불이 꺼져 다시 불을 붙이기도 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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