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두 경찰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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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에서는 매년 3백명 이상의 경찰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하루 평균 1명꼴로 이는 전체 국민 자살률의 4배나 된다.자살하는 경찰관의 숫자가 직무수행중 사망하는 경찰관의 2배에 이른다는 점도 경찰당국이 골머리를 썩이는 중요한 이 유 가운데 하나다.물론 스트레스 때문인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은 매우다양하다.최근의 몇가지 사례에서 이들이 겪는 스트레스의 내막을엿볼 수 있다.
27년간 근속한 시카고의 한 경찰관은 집에 들어오기만 하면 부인이 바가지를 긁어대자 어느날 저녁『혼자 있게 해주지』라고 중얼거리며 부엌으로 가 권총을 이마에 쏴 자살했다.뉴욕에서는 할렘街 부패 스캔들에 연루돼 조사받던 경찰관과 음 주운전으로 기소된 경찰관이 두어시간 간격으로 잇따라 자살해 충격을 주었다. 경찰당국이 대책을 등한히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경찰관 선발심사를 강화하는가 하면 상담(相談)프로그램을 개선해 자살예방에 주력하고 있지만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각자가 안고 있는 자살요인이 겉으로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을뿐만 아니라 상담에 응하게 되면「문제 경찰관」으로 낙인찍히고 출세에도 지장을 받게 된다고 누구나 믿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근본 바탕이 아무리 정직하고 성실한 경찰관이라 하더라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그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는데 있다. 어느모로든 모범경찰로 칭송이 자자했던 워싱턴의 한 여경(女警)이 작년말 최대 마약조직의 하수인 혐의로 기소된 것이 좋은 예다.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의 수렁에 빠지고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해 좌절과 갈등 속에서 헤매는 것이다.
자살까지는 몰라도 이런 형편은 다른 나라들도 비슷할 것이다.
특히 부정부패가 심한 나라일수록 경찰관들을 악에 물들게 하는 유혹의 손길은 더욱 적극적이게 마련이다.
그래도 아직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려는 경찰관이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 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23일 하루만 해도 한 경찰관이 강도를 연행하던중 강도가 휘두른 흉기에 배를 찔려 사망했으며,또 한 경찰관은 부산 송도방파제 앞바다에서 침몰한 선박 구조작업을 벌이던중 성난 파도에 휩쓸려 실종됐다.직무수행과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를 몸으로보여준 이들 두 경찰관이야말로 이 시대의 뒤틀린 경찰관像을 바로잡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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