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말리기만 하는 통상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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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미(韓美)간 통상협상이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말로만 협상이지 실제로는 미국의 스케줄대로 움직여온 것이 지금까지의 관례였다.한마디로 미국의 압력에 굴(屈)해온 것이다.지난 20일 전격발표된 진공포장냉장육.냉장식품등에 대한 식품류유 통기간의 협상타결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미국측안을 거의 수용한 것이다. 6.27선거전에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당해도 1년여의 시간이 있기 때문에 그동안 충분한 준비를 통해 대결해나가겠다고 큰소리쳐 왔다.농민들도 이런 정부의 태도에 박수를 보냈었다.그러나 선거후 상황이 급변했다.이 협상안이 WT O패널위원회로 넘어가는 것을 막는데 급급했다.그 위원회에 넘겨질 경우 미국측의 주장에 자신있게 대응할 논리(論理)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당초 97년말로 예정됐던 진공포장냉장육의 유통기한 자율화시기가 내년 7월로 앞당겨지게 됐다.또 냉장육의 잠정유통기한도돼지고기의 경우 10일에서 45일로,쇠고기는 14일에서 90일로 각각 늘어나게 됐다.이로써 이르면 오는 10월부 터는 미국의 질높은 신선육(생고기)이 우리 한우를 밀어내고 곧바로 우리식탁에 오르게 됐다.
지금까지 비교적 질이 낮은 냉동육의 수입으로도 국내 축산농가가 피해를 보고 있는 마당에 앞으로 질좋은 외국산 생고기가 직접 도입되면 국내 축산농가는 큰 타격을 받을게 뻔하다.그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유통기한을 돼지고기 는 45일,쇠고기는 90일로 늘려주었는데 과연 국내 냉장시설이나 기술이 이를 감당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잘못하면 상한 고기를 먹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물론 정부입장에서도 앞으로 韓美간에 가로놓여 있는 통상현안이산적한 상황에서 이 정도의 양보는 불가피하다고 말할 것이다.작은 것은 주고,큰 것을 얻어내자는 계산도 있을 것이다.
미국과의 통상협상에 관한한 우리는 체계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못하고,협상전문가도 없이 그때 그때 임기응변식의 대응을 해온 게 사실이다.이제 제대로 체제를 갖춰 밀리기만 하는 통상협상은지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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