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맨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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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명박 대통령이 5일 서울 은평뉴타운 건설 현장을 방문한 것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장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의 지역구 내에 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여론조사에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에게 열세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야권은 대통령이 이 의원을 돕기 위해 선거법상의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며 선관위에 조사를 의뢰했다. 선관위는 대통령이 현장에서 선거 관련 발언을 한 것도 아니고 공사 관계자들을 만난 정도이므로 법 위반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선관위의 해석은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투표일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대통령의 행동은 불필요한 오해를 살 가능성이 있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시장 시절 의욕적으로 추진한 사업의 현장을 확인하는 것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선거일 이후에 해도 되는 것이지 구태여 선거 전에 해서 여론의 의심과 야권의 반발을 부를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더군다나 대통령의 방문 하루 전 선관위가 공무원의 중립 의무 협조를 요청한 일도 있었다. 최근 국토해양부 장·차관 등이 인천 해운항만청을 방문해 인천신항 건설 지원을 약속한 것을 거론한 것이다. 선관위는 “선거일까지는 공무원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지역 출장이나 지역개발 등과 관련한 발언을 자제토록 각 부처에 특별히 강조해 선거법 위반 시비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통령의 방문 당일인 5일엔 청와대 4급 행정관이 자신이 보좌관으로 일했던 한나라당 이종구(서울 강남갑) 후보를 돕기 위해 경쟁자의 홈페이지에 경쟁자를 비난하는 글을 올린 사건도 드러났다. 청와대는 그를 직위해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해 선관위로부터 수차례 경고를 받았다. ‘대통령의 선거 개입’ 논란은 야당 시절 한나라당이 정권을 공격한 주요 메뉴였다. 이 대통령과 공무원들은 법 위반은 물론, 행여 오해를 받을 행동도 조심해야 한다.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