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칼럼>관철동시대 43.괴짜기사 서봉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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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이국을 떠돌던 루이나이웨이(芮內偉)9단은 하루 아침에 세계바둑계의 신데렐라가 됐다.그녀는 일본의 신예강자 고마쓰(小松英樹)8단에 이어 「한국의 자랑」 이창호(李昌鎬)7단을 꺾었다.도쿄의 일본기원은 흥분으로 달아올랐다.조훈현(曺薰鉉 )9단이 맥을 못춘다는 이창호,지난해 린하이펑(林海峰)을 꺾고 세계챔피언이 된 신비의 소년 이창호가 한 여자에게 무너졌다는 사실이 깨소금같은 화제를 만들어냈다.
곧이어 芮9단은 자신의 남편을 꺾은 양재호(梁宰豪)9단에게 빚을 갚고 맨먼저 준결승에 올랐다.주최자인 잉창치(應昌期)의 노안엔 시종 함박웃음이 떠나지 않았다.대회에 천안문사태와 관련된 芮9단부부를 초청해 놓고 중국측의 괴로운 반발 에 부닥쳐왔으나 이것으로 만사가 해결된 것이다.
구시대 일본 미학(美學)의 상징인 오타케 히데오(大竹英雄)9단도 50세의 나이로 준결승에 올랐다.그는 이무렵 후지쓰배 결승에 진출하고 명인전의 도전자가 되는등 바둑계에선 드문 기적을만들어가고 있었다.
보스기질의 오타케9단은 기타니(木谷)도장이 배출해 낸 최초의기재(棋才)였다.속기에 능하고 감각이 뛰어났다.기타니도장의 수석사범으로서 도장을 이끌어가는 실질적인 원동력이 되었다.그가 10여년만에 전장에 다시 돌아와 「일본의 희망」 이라 불리는 차세대 주자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9단을 꺾은 일도 이 대회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조치훈(趙治勳)은 알아주는 강자답게 아와지(淡路修三)9단을 가볍게 꺾었다.
문제는 서봉수(徐奉洙)였다.한국에서 조훈현.이창호에게 시달려깊은 슬럼프에 빠진 서봉수.그가 과연 후지쓰배 2연패를 자랑하는 일본최고 인기기사 다케미야(武宮正樹)9단을 이겨낼 것이냐.
徐9단은 그렇게 했다.역전승이라지만 의외로 쉽게 이겼다.
서봉수란 사람은 괴짜다.이창호는 턱없이 강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잘 진다.중국 바둑은 턱없이 약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이때까지만 해도 중국기사에겐 단 한판도 진 일이 없다.
서봉수가 우습게(?) 보는 일류중에 다케미야와 오타케도 들어간다.다케미야는 우주류니 뭐니 해서 허망한 중앙을 에워싸는게 영 승부사답지 않아 오죽하면 한때는 「어리석은 다케미야」라 부르기도 했다.
오타케는 미학이니 뭐니 하는게 영 독한 사람같지 않아 승부사특유의 강렬한 맛은 없는 사람이라 단정하고 있었다.서봉수는 이들을 「멋부리는 낭만주의자들」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있었다.
이런 심리상태가 다케미야를 꺾는데 힘이 됐다.슬럼프라지만 서봉수도 실력자라 스스로 겁먹지 않는한 여간해서 쓰러지지 않는 저력이 있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4강의 얼굴이 정해졌다.서봉수는 조치훈,오타케는 루이나이웨이와 맞붙게 됐다.시합은 넉달후인 92년11월,대국장소는 타이베이(臺北).
그런데 큰 문제가 생겼다.서봉수는 조치훈을 이창호 또는 그 이상으로 강하다고 믿고 있었다.그는 두려웠다.평생의 라이벌 조훈현처럼 세계대회에서 꼭 우승하고 싶었으나 조치훈이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버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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