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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 직무정지 4일째] 청와대의 휴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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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 의결 사태를 맞아 어수선했던 청와대가 다소 안정을 찾아가는 분위기다. 김우식 비서실장은 지난 13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청와대 직원들의 '정위치 고수'를 지시했다. 특히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야근 당직자들의 긴장을 요구했다.

평일엔 오후 10시, 휴일엔 오후 6시까지 각 사무실에 당번이 근무토록 하는 등 빈틈없는 업무처리 지침을 내렸다. 15일엔 金실장이 전체 직원 조회를 열고 업무기강을 다잡을 예정이다. 청와대 비서실은 대통령 신분을 유지한 채 관저에 머물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대통령 권한 및 행사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선 고건 대행을 보좌해야 하는 이중적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盧대통령에 대한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근접 취재도 13일부터 중단됐다. 근접 취재는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에 의존하지 않고 풀기자들이 대통령의 공식 행사를 직접 취재하는 것이다. 盧대통령의 행사를 청와대 입장에서 전달하고, 언론의 비판적 보도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기사를 내곤 했던 '청와대 브리핑'도 발행이 잠정 중단됐다.

盧대통령은 주로 밀린 보고서를 점검하거나 독서로 소일하고 있다고 한다. 탄핵이 가결된 지난 12일만 해도 盧대통령은 주변 사람들에게 "난 항상 가다 이렇게 넘어지곤 한다"며 자신의 정치 역정에 대해 다소 힘들어 하는 기색을 보였다고 한다. 언론 보도 등을 살피며 담담하게 탄핵 정국에 대한 구상도 가다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으로서 정치적 시비가 불거지지 않게 비공식 일정을 잡는 데도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다는 게 주변의 얘기다.

공식 업무에서 손을 뗀 첫날인 지난 13일 오전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위로전화를 받은 盧대통령은 "(탄핵안 처리과정을)TV로 보며 정말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참모들에게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한 盧대통령은 권오규 정책수석이 "정치 역경 극복과 경제 대개혁 과정이 담겼다"며 권한 '마거릿 대처',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출간한 '이제는 지역이다' 등을 읽는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소재로 한 장편소설로 자신이 청소년 권장도서로 소개했던 '칼의 노래'도 다시 손에 잡았다. 휴일인 14일엔 평소처럼 부인 권양숙 여사 등 가족과 함께 청와대 뒷산을 등반했다.

재충전 외에 盧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 대한 준비도 꼼꼼히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盧대통령은 탄핵안 가결 당일 참모들에게 헌재에 직접 출석해야 하는지 등 향후 절차를 묻기도 했다. 헌재에 출석할 경우 탄핵소추의 검사격인 국회 김기춘 법사위원장의 공격을 방어하는 논리 대결을 벌여야 한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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