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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아웅산 수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기본적인 인권의 보장을 거부하는 체제아래 공포는 일상생활의일부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투옥(投獄)에 대한 두려움,고문을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사랑하는 가족과 친구,그리고 생계수단을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고독의 공포,실패 에 대한 두려움등이 항상 개개인의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아웅산수지는 6년전,연금(軟禁)직전 쓴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했다.그러나 그녀에게 있어 공포는 문명화된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다. 따라서 「그 모든 것이 후퇴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진로가 궁극적으로 정신적.물질적 향상을 지향하게끔 되어 있다는역사의식과 고귀한 윤리적 가치를 지키려는 확고한 신념」에 의해발휘되는 용기와 인내로 극복될 수 있는,또 극복되어야 할 것이었다. 연금생활 6년간 이런 신념으로 그녀는 해외망명을 포함한절대권력의 회유와 협박에 철저한 비폭력(非暴力).불타협(不妥協)의 자세로 맞서왔다.사랑하는 가족,국민과의 단절도 그녀의 용기를 꺾지는 못했다.
『두려움을 모른다는 것은 큰 축복일 수 있다.그러나 부단한 노력을 통해성취된 용기,공포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을 습관화함으로써 나타나는 용기,그리고 냉혹하면서도 무제한적인 압력앞에서도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이다.』 88년 어머니의 간병(看病)을 위해 귀국한 직후 민주화투쟁의 전면에 나선 그녀의 삶은 이러한 용기를 시험하는 현실의무대이기도 했다.89년7월 내란(內亂)선동을 이유로 시작된 연금,90년5월 30년만의 다당제(多黨制)총선에서의 압 승,그럼에도 이루어지지 않은 민정이양(民政移讓)과 계속된 군부의 철권통치,법을 뜯어고쳐가며 연장된 가택연금,연금기간중 단 한차례만허용된 가족과의 만남.이런 가혹한 시련속에서도 그녀는 민주화의상징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고,그녀의 자전 적(自傳的)수필집 제목처럼「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증명해왔다.
그런 아웅산 수지가 이제 6년만의 연금에서 풀려났다.정권 유지가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된 경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외국의 원조를 끌어들여 보겠다는 미얀마 군사정권의 고육지계(苦肉之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미얀마의 민주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될 이러한 고육지계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은 권력의 채찍에대한 공포에 질 수 없다는 한 여인의「용기」였음을 우리는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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