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칼럼>관군은 없고義兵만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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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관군(官軍)은 다 어디 가고 의병만 남아있는가.삼풍참사 구조작업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중요한 고비가닥칠 때마다 자원봉사자나 시민,그리고 기업의 헌신적 협조로 위기를 넘어서는 걸 보면서 안타까움을 넘어선 분노 의 심정마저 든다. 워낙 날벼락같은 대형 참사라 초기엔 누구나 경황이 없었다 치자.그러나 그 경황속에서도 인근 주부들은 밥통을 싸들고 달려오고 김밥을 말아 구조대원들의 세끼 끼니를 위해 손이 붓도록 동분서주했는데 정작 구조대원들의 지원을 맡아야할 官 은 두손 놓고 있었다.
1주일 넘어서야 3천여 현장요원들의 급식을 책임지겠다고 나섰지만 예산이 없어 서울시는 각 구청에 한끼씩을 동냥하듯 조달하고 있다 한다.3백억원의 재해기금이 있지만 이번 참사는 천재지변이 아니어서 쓸래야 쓸 수가 없다는 기막힌 소리 만 하고 있다. 참사 소식과 함께 현장에 필요한 면장갑.마스크.수건이 모자라고 절단기.용접기가 급하게 필요하다는 보도가 나가자 시민과기업들은 앞다투어 현장으로 달려갔다.절단기를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체 사장은 공장안의 절단기를 트럭에 몽땅 싣고 사고현장으로달려갔지만 분실시 책임질 수 없다는 대책반 직원의 말을 듣고 그냥 돌아와야만 했다.
부서진 잔해물 처리를 위해 대형 덤프 트럭이 급하다는 소식을듣고 부랴부랴 기업에서 파견돼 온 기사는 사고 현장에 도착했지만 접근 자체가 금지되었다.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이 기사는 흰종이에 「긴급대책반」이라 쓰고 붉은 사선을 그 어 트럭 유리창에 붙였다.이러니 무사통과였다.그러나 잔해물 쓰레기를 덤프 트럭에 실은 다음 어디로 가서 버려야 할지를 물었지만 어느 누구도 몰랐다.운전기사는 성남으로,난지도로 헤매며 다니다가 결국 김포매립지까지 가서야 쓰레기를 버릴 수 있었다.잔해 쓰레기 한트럭분 처분하는데 하루가 다 가버렸다.
이 정도야 큰 사고가 난 뒤에 으레 있을 수 있는 자잘한 착오일 수 있다.그러나 사고대책본부가 제정신을 차리고 뭔가 조리있게 일을 처리할 시점이 되었을 때인데도 지방정부든 중앙정부든정부답게 앞서 챙기고 지휘하는 면모를 볼 수가 없었다.
1주일이 넘도록 여전히 현장 요원들의 식사제공은 자원봉사자들에게 맡겨졌고 일체의 구조 장비나 구호물품마저 기업체 몫으로 남아있었다.인명구조에 결정적 공헌을 했던 각지방 소방서소속 구조대원들이나 탄광촌 광원들이 사고현장 노천에서 모 포를 둘러쓰고 새우잠을 자는 보도사진을 보노라면 우리가 무정부상태에 살고있는가 하는 착각마저 든다.
유가족.실종자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은 어떻게 헤아려야 할지,그들의 절박한 사정을 해소하는 길은 무엇인지 함께 걱정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게 정부가 할 일이고 서울시가 해야 할일인데도 사고발생 열흘이 지나도록 실종자 명단마 저 제대로 돼있질 않으니 참다못한 유가족.실종자 가족들이 거리까지 뛰쳐나와울분을 토하지 않는가.
평시엔 관청의 문턱이 저만치 높고 관리들은 목에 힘이나 주더니 위기상황만 되면 도망가기 바쁘고 복지부동이라면 어찌 우리가정부를 믿고 살 수 있겠는가.
우리 역사속에 국가 위기상황에서 관군은 보이지 않고 의병만 보인 사례가 너무나 많다.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군은 밀려오는 왜적에게 단한번 저항도 못하고 일패도지(一敗塗地)만 했다.
전국 곳곳에서 왜적을 괴롭히고 진격을 차단한 것은 오로지 의병이었다.선조가 명나라에 공식통보한 전국 의병수가 2만6백명이라니 전쟁초기엔 의병수가 관군보다 많았음을 입증한다.
***공직자들 거듭나야 의병이나 자원봉사자들은 어디까지나 지원세력이다.주력은 정부고 관이어야 한다.지난 3년동안 수십명에서 수백명이 죽고 다치는 대형 참사를 무려 여덟번이나 겪고도 아직도 관군은 보이지 않은채 의병만 살아있다면 장차 이 나라 장래는 어떻 게 될 것인가.
실속없고 현실감없는 개혁만을 외칠게 아니다.법을 고치고 관청만 신설한다고 해결되는게 아니다.시민과 국민의 안위(安危)를 지키는 주체가 정부임을 확인시켜주는 공직자들의 거듭나기 개혁을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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