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직무정지] 해외언론 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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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 워싱턴 포스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파이낸셜 타임스 등 미국과 영국의 주요 신문들이 한국의 대통령 탄핵 소추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노무현(盧武鉉)대통령 탄핵사건과 관련해 세계 주요 언론들은 12, 13일 대체로 한국의 정치와 정치문화를 우려하고 비판했다.

◇미국 언론=한국의 분열상에 초점을 맞췄다. 워싱턴 포스트는 "한국이 지금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 盧대통령 지지세력과 반대세력 간의 분열로 1987년 민주화 이후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그동안 盧대통령과 지지자들이 우방인 미국과 소원하고 북한.중국과 더 따뜻한 관계를 맺으려 했으며 한국의 보수층과 재계 지도자들은 이를 비난해 왔다고 전했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한국이 어느 때보다 이데올로기로 분열돼 있음을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뉴욕 타임스는 서울을 방문 중인 톰 리지 미 국토안보부 장관의 말을 인용해 "(초유의 탄핵 사태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헌정질서가 유지되고 있으며 국내외 경제활동도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사소한 정치적 다툼이 국가통치를 사실상 마비시킨 위기로 비화했다고 보도했다.

◇유럽 언론=비판적인 보도가 많았다. 영국의 BBC방송은 한쪽에선 "고질적인 부패정치에 과감히 맞선 개혁의 챔피언"으로 盧대통령을 떠받들고 다른 쪽에선 "대통령의 품위를 찾아볼 수 없는 아마추어이자 정치판의 아웃사이더"로 깎아내린다고 보도했다.

BBC는 "이런 극단적 평가의 이면에는 계급 갈등적인 측면과 세대 간 갈등, 보다 민주적인 정치문화로의 이행 등의 요인이 있다"고 분석하고 "다음 총선에서 여당이 동정 표에 힘입어 다수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번 사태로 경제적 타격을 우려하면서 한 신용평가회사 간부의 말을 인용해 "한국은 정치적으로 팔다리가 잘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여당 의원들이 국회 회의장을 점거한 것은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보수 성향의 쥐드 도이체 차이퉁은 "盧대통령이 결과적으로 국가를 통합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양극화시킨 측면이 있다"면서 "명예롭게 임기를 마칠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좌파지인 프랑크푸르트 룬트샤우는 "국회의 탄핵안 의결은 한국에 불필요한 양극화와 불안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파지인 디벨트는 "탄핵이라는 절차를 통해 자신들에게 부담스러운 정치적 인물을 퇴진시키려고 하는 것은 결코 민주주의적이지 않다"는 시각을 보였다.

프랑스의 르 피가로는 탄핵사태를 '익살 인형극'에 비유했으며 르몽드는 "이번 탄핵 표결은 10여년 전에 시작된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정치적으로 아직 미성숙하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언론=탄핵사태가 주변국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13일자 1면에서 "盧대통령이 '여의도'에 지나치게 집착해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하고 "동정 표를 유발해 이번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런 정쟁이 계속되면 결국 국내개혁뿐 아니라 세계 경제나 한반도 문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13일자에서 "盧대통령은 4월의 총선거를 '부활'의 토대로 삼으려는 시나리오를 그리지만 그 사이 외교는 어떻게 되나"라며 "한국 정치권의 끝없는 혼미에 한국 국민뿐 아니라 주변국들이 한숨을 쉬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언론=홍콩의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오늘의 혼란상은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고통을 반영한 것"이라며 "수십년 독재로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못해 터진 일"이라고 보도했다. 명보(明報)는 "대통령 직무가 정지돼 한국 정치가 진공 상태에 빠졌다"며 "열린우리당이 이를 정변(政變)으로 규정하고 있어 정치적인 내전 상태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번 탄핵 사태의 최대 패배자는 (여야가 아니라) 한국 경제와 남북관계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매체들은 촛불시위.차량 돌진.분신 등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인터넷에선 "한국이 무너진다"라는 반응도 있었다.

워싱턴.런던.파리.베를린.베이징.도쿄.홍콩=김종혁.오병상.박경덕.유권하.유광종.김현기.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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