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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의약박물관 만든 김신권 한독약품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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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 김신권 한독약품 회장이 故 김두종 박사가 기증한 도서들이 진열된 서가 앞에 서 있다.

'동의보감''언해태산집요' 등 조선 최고의 명의(名醫) 허준의 저서 다섯 종(種), 조선조 왕자와 공주의 태(胎)를 태워 모아놓던 '백자 태 항아리', 고려시대의 '내의원'이라 할 '상약국'에서 약을 담아두던 '청자상감상약국명합' ….

국내 최초의 기업 박물관이자 올해로 문을 연 지 40주년을 맞는 '한독의약사료실'은 이처럼 진귀한 고의서와 의약기 등 7500여점의 의약 관련 자료를 한데 모아놓은 곳이다. 소장하고 있는 보물만 여섯 점에 이른다.

충북 음성의 한독약품 공장 부지에 있는 '…의약사료실'은 이 회사의 창업주 김신권(金信權.82)회장이 손수 세웠다. 1957년 독일 훽스트(現 아벤티스 파마)와의 기술 제휴를 위해 하이델베르크에 갔다가 본 '국립독일약학박물관'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한평생 약과 관련한 일을 해온 사람으로서 귀중한 의약 자료를 챙겨야겠다는 깨달음이 들었어요.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때 많은 자료가 소실된 데다 옛것을 쉽게 버리고마는 국민의 습성 때문에 수집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金회장이 열성을 갖고 자료를 사모은 데다 귀한 소장품을 기증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속속 나타나 박물관은 어느덧 국내와 해외 의약학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자리를 잡게 됐다.

"숙명여대 총장.서울대병원장을 지낸 고(故)김두종 박사가 '향약제생집성방' 등 고의서 3000여권을, 홍문화 전 서울대 약대 학장이 약학 서적 5000여권을 기증해주셨어요. 우리 회사와 거래하는 외국 제약회사 관계자들도 소문을 듣곤 방한할 때마다 자기 나라의 전통 의약기를 한두점씩 가져다주곤 했죠."

이처럼 여러 사람의 정성으로 탄생한 '…의약사료실'엔 그간 의사.약사는 물론 의약학을 전공하는 학생까지 해마다 7000여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드라마 '대장금'의 연출자인 이병훈 PD도 1999년 전작 '허준'을 기획할 때 이곳을 찾아 한의학에 대한 상식을 넓히고 갔다. 당시 조선 최초로 왕을 진맥한 의녀(장금)가 있었다는 얘기도 여기서 듣고 갔다고 박물관 관계자는 전한다.

'…의약사료실'은 40주년을 기념해 소장품의 도록(圖錄)을 만드는 한편 일반인에게도 문호를 활짝 개방했다. 평일.주말(공휴일 제외)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무료로 관람객을 맞는 것이다.

金회장은 "알찍이 저에게 서로 나누는 기쁨을 알려준 숙부님(한국기독교박물관을 창설한 故 김양선 목사)께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재단을 설립해 육영사업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평북 신의주에서 태어난 金회장은 19세 때 중국 단둥(丹東)에서 한국인 중 처음으로 약종상 국가시험에 합격해 약방을 열었으며, 1.4 후퇴 때 월남해 약 도매상을 하다가 제약업에 뛰어들었다. 올해는 한독약품 창사 50주년이자 金회장과 부인 김정화(77)씨의 결혼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金회장 부부는 오는 16일 회혼례를 올릴 예정이다.

음성=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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