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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손들, 강북 연립·다세대 쇼핑하듯 사재기 나서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SUNDAY

“예전 같으면 난리가 났을 텐데…. 어째 움직임이 없네요.”

27일 오후 서울 개포동 개포주공아파트단지 근처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이명박 대통령의 재건축 활성화 발언 이후 시장 상황을 묻자 빈 가게를 지키던 직원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대통령이 한마디하면 전화가 빗발치고 금세 값이 오르는 게 공식처럼 돼 있었는데 이번엔 전화 문의조차 뜸하다”고 했다. 매물이 사라지거나 며칠 내로 계약이 이뤄지는 일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부동산 정책이 어디로 갈지 모르고 규제완화도 불분명해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 모두 눈치를 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부동산 시장이 ‘마이웨이’를 가고 있다. 24일 대통령이 부동산 시장의 뇌관인 재건축·재개발 완화 문제를 직접 언급한 뒤 용적률 상향과 사업기간 단축 등의 후속 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시장은 무덤덤하다. 재건축과 강남권이 죽을 쑤고 강북권의 소형 아파트와 연립·다세대주택은 날아가는 추세가 오히려 강해졌다.

스피드뱅크에 따르면 지난주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의 아파트값은 0.01% 떨어지며 3주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이들 지역의 재건축은 한 주 전보다 오히려 낙폭이 커졌다. 반면 노원·도봉·강북구를 중심으로 한 강북권의 상승세는 가파르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현재 상황에선 재건축보다 재개발이 더 유리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며 “적은 돈으로 비교적 규제를 덜 받으며 투자할 수 있는 강북권으로 자금이 몰리는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잠잠한 강남

“사람들이 재건축엔 관심도 없어요. 급매로 나온 신축 아파트를 찾는 실수요자만 가끔 보이죠.” 잠실5단지와 장미·진주아파트 등 재건축 추진 단지가 밀집해 있는 서울 잠실동 큰길공인 관계자의 말이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에도 상황은 그대로라고 한다. 그는 “용적률 상향이나 사업기간 단축은 재건축에 관련된 변수 중 사소한 것”이라며 “소형 평형이나 임대주택 의무비율 등 핵심 규제가 풀리지 않는 한 재건축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기 어려울 전망”이라고 했다. 개포동 강남공인 관계자도 “요동은커녕 조짐도 안 보인다”며 “대출 규제 탓”이라고 말했다. 강남권에 몰려 있는 6억원 이상 고가주택을 대출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미약하지만 반응을 보이는 곳도 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근처의 성창공인 관계자는 “매물이 들어가고 호가도 평형별로 1000만∼2000만원 올랐다”고 했다. 하지만 단번에 적게는 3000만원, 많게는 5000만원까지 뜀뛰곤 했던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매수세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다.
 
강북은 성큼성큼

강북의 분위기는 강남과 딴판이다. 도봉구(0.88%)·노원구(0.87%) 등 동북권 집값이 크게 뛰었다.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노원구는 학원이 밀집한 중계동에서 시작된 오름세가 상계동 쪽으로 확산되고 있는 형국이다. 매물이 없다 보니 수요자들이 인근 지역으로 눈길을 돌리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 가장 많은 79㎡(24평)형은 지난해 겨울 2억4000만∼2억5000만원에서 최근 3억2000만∼3억3000만원으로 상승했다.

강북의 다른 구에서도 오름세가 뚜렷하다. 서대문구와 성동구·마포구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노후 주택이 밀집해 뉴타운으로 재개발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곳들이다. 동북권이 단기간에 많이 오르다 보니 상대적인 저평가 지역으로 매수세가 몰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마포구 성산대우시영 73㎡(22평)형은 최근 두 달 새 3억6000만원에서 3억8000만∼4억원으로 올랐다. 스피드뱅크 김은경 팀장은 “강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다는 인식이 있는 데다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이 든다는 점, 뉴타운 등 도심 재개발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볼 것이라는 점 등이 상승 원인”이라며 “전셋값이 오르다 보니 매매로 방향을 바꾸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가속이 붙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통 10년 이상이 걸리는 재건축에 비해 재개발 기간이 짧다는 점도 한 요소다.
 
투기 심리 차단해야

김모씨는 최근 강남의 8억5000만원짜리 아파트를 사려던 맘을 바꿔 마포의 4억원짜리 소형 아파트 두 채를 사기로 했다. 종합부동산세 등 세금 부담도 고려됐지만 강남보다 강북이 더 유망할 것이란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소형 평형 강세가 계속되고 재건축이 강남보다 수월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매물이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강북 상승세를 틈타 투기 심리도 부풀어 오르고 있다. 강북에서 강남으로 흐르던 자금 흐름이 역전되고 있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진단이다. 상계동 엔젤공인 관계자는 “20평대 이상은 초·중·고생 자녀를 둔 실수요자가 많지만 그보다 작은 평형은 대개 강남 등지의 투자 수요”라며 “집을 사는 사람 중 투자 수요가 절반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예 5채 이상을 사 임대사업 등록을 하거나 재개발 가능성이 높은 곳의 집을 사 여러 가구로 쪼개는 지분 쪼개기도 성행한다”고 전했다. 박갑현 지지옥션 매니저는 “경매시장에서도 강북 소형과 연립·다세대를 여러 채씩 사들이는 사람이 늘고 있다”며 “매매가가 오르는 가운데 이사철 전셋값 강세까지 겹쳐 서민이 갈 곳이 줄었다”고 지적했다. 고준석 팀장은 “투기성 수요는 세금 정책 등으로 억제하면서 이른 시일 내 공급을 늘려야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임대사업을 빌미로 소형 주택을 5채 이상씩 대규모로 사들이는 세력을 차단할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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