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커피전문점으로 바꿔볼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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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 30면

신인섭 기자 (촬영 협조 스타벅스)

에스프레소·카페라테·카푸치노·카페모카·카페오레·캐러멜마키야토…. 1999년 미국의 커피전문점 스타벅스가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 앞에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생경한 메뉴판 앞에서 꽤 당황해야 했다. 인스턴트 커피와 원두 커피가 커피의 모든 것인 줄 알던 때였으니 열 가지가 넘는 커피 메뉴 가운데 뭘 골라야 할지 난감할밖에.

에스프레소 머신만 있으면 카페라테도, 카푸치노도 OK

하지만 다양한 커피전문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밥값보다 비싼 돈을 내고 커피를 마시는 데 익숙해진 요즘엔 복잡한 커피 메뉴가 낯설지 않게 됐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커피전문점 커피를 만들어 먹는 애호가들이 늘고 있다. 백화점마다 앞다퉈 에스프레소 머신 매장을 설치하고, 온라인쇼핑몰이나 할인점에도 중저가 에스프레소 머신 판매 코너가 생겨나고 있다. 이마트 가전팀의 한미경 대리는 “3~4년 전만 해도 커피전문점 때문에 커피 제조기 판매가 위축되는 양상이었으나 에스프레소 커피를 직접 만들어 먹으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커피 제조기 매출이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물 닿는 시간 짧아야 제 맛

에스프레소 머신은 고압의 증기로 뜨거운 물이 원두 커피 가루를 빨리 통과하게끔 해준다. 이 과정에서 물이 커피로 바뀐다. 에스프레소 머신엔 에스프레소용 커피 원두만 사용해야 한다. 에스프레소 머신에는 10기압 이상의 증기를 만들 수 있는 보일러가 장착돼 있어 20초 안에 물이 커피 가루를 통과하도록 해 준다. 물이 커피 가루를 빨리 통과해야 하는 것은 원두 고유의 맛과 향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다. 물에 닿는 시간이 길수록 커피의 쓰고 떫은 맛이 강해진다. ‘문박사 커피·차 연구소’의 문준웅 대표는 “에스프레소 머신은 1948년 이탈리아에서 발명된 것으로 원두 커피의 맛과 향을 풍부하게 추출해 준다”고 설명했다.

에스프레소는 카페인 함유량이 일반 커피보다 훨씬 적다. 카페인은 물에 녹는 수용성 성분이어서 물과 접촉하는 시간이 길수록 더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에스프레소 머신만 있으면 커피전문점에서 파는 다양한 커피를 직접 만들 수 있다.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추출한 커피에 물을 적당히 섞으며 흔히 아메리카노라고 불리는 연한 에스프레소가 된다. 또 에스프레소 양의 3~4배 정도 되는 우유를 섞고 거품을 낸 우유를 얹으면 카페라테가 된다. 에스프레소 양의 2배에 해당하는 우유와 거품 우유를 섞은 후 계핏가루나 코코아 가루를 뿌리면 카푸치노다. 에스프레소에 휘핑크림을 얹으면 에스프레소 콘파냐, 초콜릿 시럽과 설탕·생크림·휘핑크림을 얹으면 카페모카가 된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으면 커피전문점에서 파는 메뉴 대부분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젊은층은 반자동 선호

에스프레소 머신은 전자동과 반자동 제품이 나와 있다. 전자동 머신은 볶은 원두를 분쇄하지 않은 채 기계에 넣어도 에스프레소가 만들어진다. 커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조작할 수 있어 편리하다. 값은 꽤 비싸다. 100만원대부터 500만원대까지 있다. 비싼 제품일수록 기능이 다양하다. 물의 양이나 추출되는 에스프레소의 양을 자동으로 조절해 주는 기능, 버튼만 누르면 카페라테·카푸치노를 만들 수 있는 기능 등이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전자동 머신 브랜드로는 ‘드롱기’ ‘유라’ ‘싸에코’ ‘크룹스’ 등이 유명하다. ‘밀레’와 ‘가게나우’는 400만~500만원대 빌트인 방식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판매 중이다. 설치비는 무료다. 현대백화점 천대명 가전바이어는 “에스프레소 전자동 머신이 독서나 대화를 하면서 고급 커피를 즐길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최근 예비 신부들의 ‘로망’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반자동 머신은 가루 형태로 분쇄된 원두 가루를 넣어 줘야 하고, 카푸치노나 카페라테를 만들려면 우유 거품을 낼 수 있는 부속 기기를 사용해야 한다. 반자동 머신은 관련 지식을 갖춘 뒤 사는 게 바람직하다. 커피 가루를 기계에 넣을 때 평평하게 고르기 위해 톡톡 두드려야 하는데, 두드리는 정도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또 물을 얼마나 넣을지, 우유 거품을 어느 정도로 낼지 등도 조절해야 한다. 롯데백화점 에스프레소 머신 매장 담당자인 이춘재씨는 “중년 이상은 전자동을, 젊은 층은 반자동을 주로 구매한다”며 “커피 매니어들이 반자동을 구입한다”고 말했다. 반자동 제품 중에선 10만~20만원대 ‘드롱기’나 30만~40만원대 ‘브리엘’ ‘비알레티’가 인기다. 온라인쇼핑몰 옥션의 정재명 실장은 “인기 있는 10만원대 반자동 제품의 경우 한 달 평균 60여 대씩 팔린다”고 말했다.

맛 좋은 커피를 보다 간편하게 즐기려면 캡슐 커피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캡슐 커피란 고급 커피 가루를 작은 캡슐에 개별 포장한 것으로 전용 기계가 있어야 마실 수 있다. 캡슐을 기계에 넣기만 하면 별다른 기계 조작 없이 일정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캡슐 커피는 여러 가지 종류의 맛이 있으며, 하나에 600~700원대다. 캡슐 커피 전용 기계는 ‘네스프레스’와 ‘싸에코’ 제품이 있으며 40만~50만원대다. 네스프레스는 롯데백화점 본점과 잠실점에서, 싸에코 제품은 신세계백화점에서 살 수 있다.

진화하는 커피 메이커

바쁜 직장인이 집이나 사무실에서 간단하게 원두 커피를 즐기는 방법은 뭐니뭐니해도 자동 추출기, 즉 커피 메이커를 이용하는 것이다. 물통에 물을 부은 뒤 여과지 위에 커피 가루를 물 1잔(150mL)당 8g 정도씩 넣고 스위치를 켜면 끓는 물이 커피 가루를 통과하면서 커피가 추출된다. 물에 닿는 시간이 길고 여과지를 지나면서 지방 성분이 빠져나기 때문에 원두 고유의 맛은 좀 떨어진다. 커피 메이커의 커피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추출 즉시 따뜻한 잔에 따라 마시는 것이다. 커피 가루도 잘 밀봉해 놔야 한다. 문준웅 대표는 “분쇄된 커피가 공기에 닿으면 바로 산화가 시작되면서 커피 고유의 맛과 향이 떨어진다”며 “상온 저장 시 볶은 커피콩은 2주 후, 가루커피는 3일 후부터 신선한 향기가 현저히 감소한다”고 말했다. 커피 메이커는 1만~5만원대의 다양한 제품이 나와 있지만 디자인에 차이가 있을 뿐 기능은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원하는 시간에 알아서 커피를 끓여 주는 타이머 장착 제품이나 따로 끓인 물이 커피 가루를 통과하도록 해 원두의 향미를 살리는 ‘아로마’ 기능 제품 등도 선보였다. 이들 제품은 10만원대 이상이다.
 
핸드밀로 집 안 장식도

시간 여유가 있다면 핸드밀(수동식 원두 분쇄기)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커피 원두를 갈아서 바로 내려 마시는 게 가루 형태로 파는 제품을 이용하는 것보다 커피의 풍미를 더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핸드밀은 집 안 인테리어용품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핸드밀 브랜드로는 독일의 ‘작센하우스’가 명성이 높다. 100년 이상 된 브랜드로 고장이 적고 칼날이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칼리타 제품은 백화점이나 온라인쇼핑몰에서 두루 구할 수 있다. 2만원대부터 10만원대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이 있다. 직접 원두를 가는 게 귀찮다면 자동 분쇄기를 선택하는 편이 낫다. 자동 분쇄기는 수동 분쇄기보다 원두의 알갱이가 고르게 갈아진다는 장점도 있다. 원두 가루 알갱이가 고를수록 커피 맛이 제대로 나온다. 원두의 분쇄 정도는 마시려는 커피에 맞춰 조절해야 한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이용하려면 원두를 곱게 갈아야 하고, 프레스필터로 커피를 마시려면 굵게 가는 게 좋다. 커피 메이커나 드리퍼를 이용하는 드립 커피는 그 중간 정도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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