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새 정부 시험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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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북한이 어제 오전 서해상에서 단거리 미사일 3발을 발사했다. 개성공단 내 남북경협사무소에 상주하던 우리 측 당국자들을 쫓아낸 지 하루 만이다. 미사일 발사에 이어 북한은 우라늄 농축과 시리아로의 핵확산 의혹을 전면 부정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서해상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남북 무력 충돌을 경고하는 북한 해군 사령부 담화도 나왔다. 남북관계 진전을 북핵 문제와 연계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공세를 본격화하고 있는 양상이다. 새 정부의 대북정책이 시작부터 시험대에 올랐다.

정부는 미사일 발사가 동계훈련 중인 북한군의 통상적 훈련으로 보인다며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지만 의도된 도발일 가능성이 크다. 남측 당국자들을 개성에서 철수시킨 지 하루 만에 미사일을 쏜 것을 우연으로 보기는 어렵다. 남북한 긴장 고조를 노린 계산된 무력시위라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더구나 어제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이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계속 우기면서 핵문제 해결을 지연시킨다면 지금까지 추진돼온 핵시설 무력화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의 존재와 시리아로의 핵확산 의혹을 정면으로 부인하면서 미국이 이 문제를 계속 물고 늘어진다면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 작업도 중단하겠다는 협박이다.

북한의 완전하고 철저한 핵 프로그램 신고는 6자회담의 명백한 합의사항이다. 신고 문제를 건너뛰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는 북한의 요구는 아무리 외교적 성과에 목마른 부시 행정부라도 수용하기 어려운 억지 주장이다. 결정적 순간에 벼랑 끝 전술로 국면 타개를 시도하는 북한의 수법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나름의 근거와 증거를 갖고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신고 문제를 비켜갈 순 없는 노릇이다. 자칫하면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이 물 건너갈 수도 있는 중대한 위기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북핵 문제가 진전돼야 남북관계도 진전될 수 있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다. 신고 문제를 둘러싼 북·미 간 벼랑 끝 대치가 이어질 경우 남북관계 경색은 피할 수 없다. 핵문제 해결이 난망한 가운데 북한의 무모한 도발이 계속된다면 상당한 수준의 긴장도 예상된다. 그렇더라도 ‘버티면 통한다’는 북한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으려면 단호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다. 일일이 맞대응할 필요는 없지만 안보를 위협하는 도발에 대해서는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 어려울수록 소중한 것은 원칙이라는 신념으로 정부는 ‘북풍(北風)’의 고비를 넘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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