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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북카페] 인력거 끄는 몰락한 관리 불러세운 손님은 옛 부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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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전족한 여인과 누워 아편을 하는 남성. 전족과 아편은 청나라 때 서양인들이 만든 엽서에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중국 근대의 풍경
문정진 외 7인 지음
그린비,
536쪽, 3만5000원

1884년 중국의 한 거리에서 남자가 인력거를 끌고 있다. 거리에서 한 손님이 자신을 불러세웠는데 흥정도 하기 전에 부끄러워하며 도망쳤다. 인력거를 끄는 사람은 몰락한 관리. 자기를 불러세운 손님은 바로 자신의 옛 부하였던 것이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다’는 제목으로 당시 신문 『점석재화보(點石齋畵報)』에 실린 한 그림이다. 『점석재화보』는 1884년부터 1898년까지 15년 동안 발행된, 중국 근대 최초의 그림신문이다.

2004년 초 신촌에서 중국학을 연구하던 이들은 『점석재화보』에 실린 이같은 다양한 이미지에 열광했다. 이들은 이를 토대로 근대 중국의 제도적·문화적 지형도를 그리고 싶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고 여덟 저자의 열망은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됐다.

이 책은 중국 근대의 공간은 어땠는지, 서구 문물이 어떻게 평범한 사람들에게 스며들었는지, 근대 문화에 대한 저항감은 어땠는지 당시 중국인의 일상과 사고방식이 사진과 화보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청나라 말기에 '비룡각화보'에 실린 격구를 즐기는 여성들의 모습. 당시 중국의 여성들은 순종하는 현모양처의 모습에서 벗어나 경제력을 과시하며 소비의 주체로 떠올랐다.

당시 중국인들은 인력거와 마차는 허용했지만 철로 건설에는 반대했다. 화보와 사진에는 철로 건설을 공포스럽게 바라보는 당대인들의 시선이 그대로 담겨있다. 기차 건설 현장 사고를 다루는 그림에는 파놓은 땅에서 솟아나는 이무기 무리를 그려넣었다. 철로 건설로 풍수가 파괴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반영돼 있다.

근대 여성의 초상도 세밀한 그림으로 볼 수 있다. 상해에 새로운 건축물에 들어선 베란다는 부인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또다른 출구였다. 여인들은 베란다에 나와 망원경을 세상을 바라보았는가 하면(청말 『비영각화보』), 명절이 아닌 평상시에도 화원 나들이를 즐기게 되었다(‘화원에서 노닐다’, 『도화일보』1910년 2월).

저자들은 ‘죄와 벌’ ‘시각공간의 근대적 변화’‘근대교육의 발전’‘근대 도시의 여성’등 각기 다른 주제를 400점에 이르는 화보와 사진을 통해 재조명하고 있다. 저자들이 풀어 썼다고 하지만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여전히 어려워보이는 문체가 많이 아쉽다.

우리 근대의 풍경도 이만큼 세밀하고 풍부한 그림으로 접하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하는, 그런 책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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