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호북극리포트>1.영하40도 빙벽에 매달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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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얼음바다 4천5백리(1천8백㎞)를 걸어서 횡단한 中央日報 북극해횡단원정대가 지난달 30일 귀국,개선했습니다.中央日報社는 북극해 도보횡단을 성공리에 마치고 금의환향한 허영호(許永浩.41)원정대장의 원정일지를 긴급입수,1일부터 연재합 니다.許대장은 영하30도 이상의 혹한 속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일지를 작성,대학노트 3권분량에 그동안의 일정과 사건들을 기록했습니다.미증유의 북극해 도보 대장정에 대한 진한 감동의 리포트가 될 『사선(死線)을 넘어…』에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바랍니다. [편집자註] 나는 또다시 살아서 돌아왔다.
지난달 19일 얼음바다 1천8백㎞(실제운행거리는 2천2백㎞)의 장정을 마치고 거의 1백일만에 사람이 사는 육지를 밟았을 때 나는 삶에 대한 경외감과 안도감을 거의 동시에 느꼈다.아니보다 솔직히 말하자면『이젠 살았다』는 생각이 먼 저 들었고 「소중한 삶」에 대한 느낌은 그 나중이었다.갑자기 공복을 느꼈고자장면이 그리워졌다.
그동안 우리는 춥고 배고팠다.원정을 끝낸 후 지난 며칠간 여러 사람이 소감을 물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짧게 대답했다.지난달 22일 캐나다 밴쿠버한인회(회장 池大允.48)주최로 열린 환영회 인사말에서도 첫머리를 이렇게 꺼냈고 좌중엔 웃음이 터졌다.그러나 나뿐 아니라 장기찬(張基瓚.41).김승환(金承煥.35).이근배(李根培.33).김범택(金凡澤.32)등 그동안 고락을 같이 한 대원 모두에게 이는 진실이었다.
지난 3월12일 러시아 근해 난빙대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수은주는 영하38도를 가리키고 있었다.눈썹에 금세 성에가 달라붙는 이같은 추위에선 단 몇 분간의 방심으로 치명적인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우리는 그간 무거울 땐 1인당 1백50㎏까지의 개인장비를 썰매에 담아 끌었다.6월 이후엔 짐이 50㎏이하로 줄어들었으나 원정기간중 대부분을 우리는 인간 「마소(馬牛)」처럼 짐에 시달렸고 무거운 썰매와 씨름하다 보면 금세 배가 고프 곤 했다.하루 열량은 1인당 5천㎈로 충분한 편이었으나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긴장감은 유난히 공복감을 더했다.매일 똑같은 식단이 하루 세끼 반복됐지만 식사시간이 기다려졌다.숟가락질을 한다거나 배고픔을 느낀다는 데서 우리는 생 존을 확인했던 것이다.
북극엔 얼음과 눈만 있는 것이 아니다.우리는 그동안 다섯 차례나 북극곰과 마주쳤으며 여우 발자국을 봤고 차디찬 북극해에서자유스롭게 자맥질하고 때로 일광욕까지 즐기는 해표를 부럽게 쳐다봤다. 무엇보다 5월7일 극점에서 갈매기와 마주친 것은 경이였다.갈매기는 연안에 사는 새다.그 갈매기는 왜,어떻게 최소한8백㎞의 얼음바다 위를 날아 외로운 북극점까지 왔을까.
나는 왜 그동안 높고 먼 곳만 찾아 헤매었던가.처음엔 단순히「좋아서」라고 생각했지만 지난 20여년간 원정을 다니면서 내가찾아낸 답은 「살기 위해서」란 것이다.아무리 위험한 원정이라 해도 일단 계획을 세우고 준비가 완료된 단계에 선 나는 「살 수 있다」고 확신했다.에베레스트의 크레바스에 빠져서도,영하 40도의 낭떠러지에 자일 한 개만 믿고 대롱대롱 매달린 채 밤을지새면서도 나는 괴로웠을지언정 삶 자체를 포기한 적은 없다.북극점에서 만난 갈매기-북극의 「조 너선 리빙스턴 시걸」은 우리에게 행운을 안겨줬다.우리는 6월16일 저 멀리 보이는 캐나다워드헌터곶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서로 얼싸안았다.그리고 사흘만인19일 결국 육지를 밟았던 것이다.머나먼 여행을 끝내고 둥지로돌아온 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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