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기 싸움 걸어온 북한에 의연히 대처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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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이런저런 경로로 불만을 표시해 오던 북한이 결국 행동에 나섰다. 개성공단 내 남북경협사무소에 상주하는 남측 당국 요원의 철수를 전격 요구한 것이다. 이에 따라 통일부·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에서 파견돼 있던 요원 11명이 어제 새벽 철수했다.

북한은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북핵 문제가 타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 확대가 어렵다”고 말한 것을 트집잡아 철수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 이유일 뿐, 실제로는 새 정부를 압박함으로써 향후 남북관계에서 기선을 제압하려는 의도가 크다고 본다. 남북관계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해 곧 있을 남한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계산도 감지된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남북관계 진전이 어렵다는 것이 새 정부의 분명한 입장이다. 유엔 인권위의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임무연장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지기로 하는 등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압박도 본격화하고 있다. 이에 대한 불만을 경협사무소 요원 철수 요구로 표출하면서 북한이 일종의 기 싸움을 걸어온 것이다.

앞으로 대북정책의 궤도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남북관계 경색과 진통은 불가피해 보인다.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치러야 할 비용이다. 북한 측 조치에 일일이 맞대응할 게 아니라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간다는 의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일희일비하거나 과도하게 불안해하는 것은 북한의 의도에 말려드는 꼴이 될 수 있음을 국민도 이해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개성공단은 남북경협의 상징이다. 가동 중인 69개 입주 기업에서 2만3000명의 북한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공단 확대는 북핵 문제 진전에 맡기더라도 기존 사업은 살려야 한다. 북한이 당국 요원 철수를 요구하면서도 민간 요원의 잔류는 허용한 것은 개성공단의 필요성 때문일 것이다. 불필요한 말로 북한을 자극함으로써 기존 사업마저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피해야 한다. 말은 최대한 부드럽게 하면서도 실제 정책은 새 정부 기조에 따라 집행하면 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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