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정책도 엇박자 … 부처마다 말 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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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부 각 부처가 내놓고 있는 정책이 곳곳에서 엇박자를 내고 있다. 사전 조율 없이 발표를 서두르다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마찰을 빚기도 한다. 안팎으로 어려운 경제를 정상화하려면 정권 초기의 이런 혼선을 조속히 수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무부가 기업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하기로 한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어장치에 대해 경제부처들이 반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재계가 그간 도입을 주장해온 포이즌필(독약조항)·차등의결권제·황금주를 제도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부실 기업까지 보호하는 도덕적 해이에 빠질 위험이 크다”며 난색이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해외투자를 유치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원자재 납품단가 연동제 역시 중소기업청은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추진하겠다”고 보고했지만 지식경제부는 “정부가 가격책정에 간섭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일단 업계 자율에 맡기겠다는 입장이다.

민영 의료보험 활성화 계획도 부처 간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재정부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다양한 의료서비스를 확충하기 위해 민간 의료보험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공적 보험의 근간이 흔들려선 안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교보·대한·삼성생명 등 생보사들은 정부 방침이 나오는 대로 민영 의료보험 상품을 내놓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상태다.

이미 발표된 방안들이 주무부처의 검토 과정에서 내용이 바뀌기도 한다. 신혼부부 주택공급과 관련, 재정부는 처음에 공급 규모는 12만 호이고 청약 자격은 ‘34세 미만 여성으로 출산 뒤 1년 이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담당부처인 국토해양부는 5만 호 공급에, 자격요건도 ‘결혼 5년 이내의 신혼부부로서 첫 출산 뒤’로 바꿨다.

전기요금 인하 방안도 마찬가지다. 재정부는 서민생활 안정대책의 하나로 7월부터 자영업자와 가계용 전기요금을 내리겠다고 발표했지만 지식경제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전기요금을 내리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숭실대 오철호(행정학과) 교수는 “각 부처의 역할을 조율해 주는 컨트롤 타워가 없다 보니 생긴 일”이라며 “정부 조직개편을 새로 한 데 따른 일시적 부작용으로 생각되지만, 국민에게 이 같은 혼선이 부처 간 주도권 다툼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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