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총재 “물가” 재정장관 “성장” 엇박자 신호에 환율만 죽어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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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시장에 엇갈린 신호를 보내면서 외환시장과 금융시장에 큰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주 들어 대통령이 물가 안정을 강조하자 한국은행 총재가 가세하고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통령의 발언이 잘못 전달됐다며 뒤집었다. 이 바람에 환율과 금리가 급등락했다. 게다가 정부는 26일 원-달러 환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시장에 개입하는 무리수를 뒀다. 그 결과 시장 가격을 왜곡하고 시장 참여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명박 정부 출범 뒤 강만수(右) 경제팀이 환율 상승을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내면서 17일 1029.2원까지 치솟았던 환율은 정부의 구두·물량 개입으로 다시 하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23일 이명박 대통령이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은 물가 안정이 7% 성장이나 일자리 창출보다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물가와 성장 사이에서 고민하던 정부가 마침내 물가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시장은 받아들였다. 이는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가 환율 하락을 원하고 금리도 인하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여겨졌다. 이 발언이 전해진 24일 환율은 다시 5.9원 떨어지며 엿새 만에 1000원 아래로 내려갔다.

여기에 25일 이성태(左)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이 기름을 부었다. 이 총재는 “중앙은행엔 물가가 가장 중요한 지표”라며 “최근 환율 급등은 천장을 한번 테스트해본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환율은 20.9원이나 떨어졌다. 하락폭이 7년여 만에 최대치였다.

그러자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나섰다. 강 장관은 25일 저녁 한 강연에서 “이 대통령이 물가를 성장보다 우선하겠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7% 성장 능력을 갖춘 경제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지만 지금 당장은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물가 안정을 우선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말을 보충 설명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이내 ‘환율이 상승해야 한다’는 지론을 다시 강조했다. 그는 “1997년 경상수지가 악화되고 환율은 계속 하락한 결과 위기를 맞았다”며 “당시와 유사하게 최근 수년간 경상수지가 악화되고 있는데도 환율은 하락해 왔다”고 우려했다.

재정부 장관이 언급해서는 안 되는 금리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강 장관은 “한국과 미국의 정책금리 차가 2.75%포인트까지 벌어졌는데 뭐든지 과유불급(지나치면 모자라는 것과 같다)”이라며 “금리정책은 중앙은행 소관이지만 앞으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는 자명한 일”이라고 말했다. 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에둘러 얘기한 것이다.

최중경 재정부 1차관도 가세했다. 최 차관은 26일 “환율이 급격히 상승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급격한 하락은 더더욱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환율 상승에 무게를 두는 듯한 발언이다.

정부는 구두 개입도 모자라 이날 시장에 직접 개입했다. 달러를 사들여 환율을 끌어올린 것이다. 외환딜러들은 외환당국이 7억~8억 달러를 사들인 것으로 추정했다. 전날까지 하락하던 환율이 10.5원이나 급반등해 986.8원으로 마감했다.

정부의 혼선과 잦은 개입은 시장 참여자들을 멍들게 하고 있다. 딜러들은 손을 놓은 채 정부의 입만 쳐다 보고 있고 환율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해 환헤지를 해놓은 업체들은 앉아서 피해를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의욕이 지나친 나머지 시장을 좌우하려고 쏟아내는 외환당국자들의 발언이 시장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정호 자유기업원장은 “외환당국자가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말을 자꾸 하면 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일 뿐”이라며 “당국자는 말을 아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렬·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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