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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힌’ 공기업 비리 … 감사원, 수사 요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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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기업 임직원들이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특정인을 합격시키기 위해 점수표까지 조작했다가 감사원에 적발됐다. 또 국책은행 자회사 임원들이 대출을 해 준 업체들로부터 돈을 거둬 골프를 치는 등 공기업 인사 비리와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원유승 감사원 특별조사본부장은 26일 “31개 공기업을 대상으로 10일부터 예비조사를 벌인 결과 증권예탁결제원·대한석탄공사의 비리 정도가 심하고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어 검찰에 수사를 요청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신입사원 선발 성적 조작까지=감사 결과 증권예탁결제원 인사팀은 지난해 11월 신규직원 채용면접 후 점수표를 몰래 조작하는 방법으로 합격권에 포함돼 있던 5명을 탈락시켰다. 대신 순위 밖의 5명을 합격 처리했다. 필기시험에서도 점수를 수정하거나 시험지에 가필해 탈락 대상이던 14명을 면접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 중 2명은 최종 합격했다. 원 본부장은 “당사자들이 모두 말을 하지 않아 청탁 여부 등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대한석탄공사는 2006년 투자한 M건설이 지난해 4월 1차 부도가 나자 1800억원을 추가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담당 본부장과 팀장은 직원 퇴직금 중간정산비와 시설투자비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허위문서를 만들어 이사회에 보고했다. 석탄공사는 허위문서를 근거로 회사채를 발행해 지원자금 1800억원을 조달했고 공사 사장은 사후에 이런 사실을 보고받고도 묵인했다고 감사원은 발표했다.

산업은행 자회사인 산은캐피탈은 60여 거래업체로부터 친목 도모 명목으로 30만~100만원의 연회비를 거둔 뒤 그 돈으로 매년 두세 차례씩 골프를 치다 꼬리가 잡혔다. 2005년 이후 이런 식으로 쓴 돈이 7000만원에 달했다. 이 회사 임원 5명은 감사원 감사가 한창이던 21, 22일에도 제주도의 한 골프장에서 거래업체 사장 17명과 골프를 친 뒤 경비 1400만원을 회비에서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추가 향응접대 여부를 조사 중이다.

◇공기업 압박하는 감사원=감사원의 이날 발표는 매우 이례적이다. 감사원은 최종 감사 결과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일부 비리 사실만 따로 떼내 언론에 공개한 적이 거의 없다. 감사원은 다음주에는 공기업 감사에 대한 중간 결과도 발표할 예정이다. 원 본부장은 “공기업 감사에 감찰 전문요원 40명을 추가로 투입하기로 했다”며 한발 더 나아갔다. 이미 총 감사요원 700여 명의 3분의 1 이상인 250명이 보름 넘게 공기업 감사에만 매달리고 있는 상황에서다.

감사원 주변에서는 “감사원이 새 정부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 공기업 감사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공기업 임원의 사표 제출을 압박하고 나서는 등 새 정부가 공기업 개혁에 초점을 맞추자 감사원이 적극 호응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남일호 감사원 사무총장도 19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101개 공기업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해 민영화와 통폐합 대상 기관을 분류해 내겠다”며 공기업들을 압박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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