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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 한국농구 올림픽行 주역 일본戰서 펄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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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한번쯤은 큰일을 해줄 것으로 믿었다.』 25일 올림픽 제1체육관 본부석에 앉았던 농구원로들은 눈가의 이슬을 훔치며 코트로 걸어 내려가 허재(許載.30.기아자동차)의 두손을 부여잡았다.
명실상부한 한국농구의 대들보 허재.
뛰어난 기량과 강한 개성때문에 늘 찬사와 비난을 함께 받았던許는 나이 서른을 채우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농구를 완성의 경지에 올려 놓았다.
許는 홈코트에서 벌어진 제18회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어떤 찬사도 초라하게 만들만큼 현란한 플레이로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8년만에,자력으로는 68년 멕시코올림픽 이후 28년만에 한국을 올림픽 본선에 올려놓았다.
특히 25일 올림픽 티켓을 걸고 맞붙은 숙적 일본과의 한판은「허재농구」의 하이라이트였다.이날 3점슛 6개 포함,28득점을올린 許는 보기 드물게 4개의 파울을 기록할 만큼 터프한 수비를 펼쳐 공수에 걸쳐 독무대를 이뤘다.
23-23으로 동점을 이룬 고비에서 3점슛 2개를 곁들이며 내리 10점을 빼내는 동안 골이 성공될 때마다 주먹을 불끈 쥐어 동료들에게 파이팅을 불어넣는 許의 모습은 경기전 『오늘 질경우 태극마크를 반납하겠다』고 다짐했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위한 몸부림이었다.
許는 결국 약속을 지켰다.게임이 끝난 후 그에게는 오직 찬사만 쏟아졌고 일본의 코칭스태프는 『허재가 있는 한 도저히 한국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가슴을 쳤다.
「농구천재」「아시아 최고의 테크니션」 등 화려한 수사를 달고다닌 許지만 그동안 태극마크를 달고 쌓은 업적은 초라했다.
특히 연장접전끝에 분루를 삼켰던 중국과의 87년 제14회대회(방콕)결승은 許의 농구경력에 원죄(原罪)처럼 따라다녔다.76-76으로 동점을 이뤘던 후반종료직전 이충희(李忠熙)가 던지기로 했던 마지막 한발의 슛을 공명심에 사로잡힌 허 재가 무리하게 허공에 띄우는 순간 아시아정상복귀의 꿈은 물거품이 돼버렸다. 許가 「믿을 수 없는 선수」라는 낙인을 지우는데는 8년이 걸렸다.그리고 일찍이 천재대접을 받았지만 국가대표로서는 대기만성이었던 許의 농구는 이제 너무나도 극적인 결실의 순간을 향해줄달음치고 있다.
〈許珍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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