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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선거취재팀 紙上방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초인 지방선거가 40년만에 실시됐다.주민자치를 기반으로한 지방자치는 앞으로 우리나라의 정치및 행정형태를 크게 바꾸어 놓을 전망이다.통합선거법에 따라 16일동안 계속된 선거운동기간중 바람직하거나 이제는 폐기돼야할 갖가지 문제점들이 부상됐다.이들을 짚어보며 바람직한 개선방향을 모색해본다. [편집자註] -40년만에 실시되는 지방선거는 국민적 관심의대상이었습니다.그러나 선거운동기간에 나타난 관심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지요.갈수록 심화되는 정치적 무관심과 함께 유권자들의 냉담한 반응에 후보들이 당혹해 했지요.다행히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점차 주민자치 의식이 되살아나면서 후보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번 지방선거는 초반부터「지역일꾼을 뽑는다」는 입장과「중간평가」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물렸습니다.정부와 민자당은 『지방선거는 정치인이 아니라 지역살림꾼을 뽑아야 한다』며 「행정가론」을 내세웠지요.이에대해 야당측은 『현정부의 실정 (失政)에 대한 중간평가』라며 정치공세를 폈습니다.
-사실 선거초반만 해도 『누가 과연 지역살림을 잘 꾸려낼 수있느냐』는 점이 중요한 이슈였습니다.그래서 야당도 행정가출신을대거 영입했지요.이에따라 서울시의 경우는 전직 구청장들이 여야로 갈려 대결하는 양상을 보였지요.
-그런데 김대중(金大中)亞太재단이사장이 「지역등권론」을 부르짖으며 사실상 정치일선에 복귀하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담담하게 진행되던 선거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죠.
-그렇습니다.정계복귀다,아니다 논란도 많았지만 金이사장이 가는 곳마다 92년 대통령선거 때 못지 않은 열기를 보였습니다.
金이사장 지지자들은 오랜만에 연설을 듣고 정치갈증을 해소하는 것같았죠.
-여기에 자민련 김종필(金鍾泌)총재의 「핫바지론」과 강원도의무대접론이 가세하면서 지역갈등 양상이 나타났습니다.선거때마다 『이번에는 꼭 타파하자』는 지역감정문제가 또다시 불거져 나온 것이지요.어떤 측면에서는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 니지만 안타까움도 매우 큽니다.
-정치9단들의 노련한 전략이라지만 너무 구태의연한 것같아요.
물론 야당선거는 「바람」인데 선거판이 「행정경험…」하며 잠잠하자 마치 적벽대전에서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비는 심정이었겠지만…. -당연히 민자당은 바람의 차단에 열을 올렸죠.민자당 이춘구(李春九)대표는 김덕룡(金德龍)사무총장과 더불어 김대중이사장과김종필총재 비판의 최선봉에 섰습니다.「두金」을 싸잡아 『지역분열주의자』『지역패권주의자』라고 공격했고 「두金」의 연대에 대해서는 『30년동안 서로 얼굴도 쳐다보지 않은 사람들이 노욕(老慾)때문에 야합하고 있다』며 세대교체를 적극 설파하고 다녔습니다. -민주당에서도 자체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이기택(李基澤)총재는 등권론을 지역할거주의로 비난했어요.李총재가 내놓은 후보들은 등권론 때문에 타격을 받게됐기 때문이죠.이부영(李富榮)부총재도 『金이사장이 물러나야 한다』면서 민자당 의 세대교체론에 동조했어요.선거이후를 겨냥한 주도권다툼도 깔려 있다고봐야죠. -가장 피해를 본 건 부산시장선거에 나선 노무현(盧武鉉)후보죠.그 때문인지 金이사장 측근들도 盧후보가 金이사장을 비난하는데 대해서는 「집토끼.산토끼론」을 내세우며 관대한 것같았어요.등권론으로 집토끼를 잡고,盧후보는 金이사장을 비판 해 산토끼를 잡으면 된다는 논리죠.
-이번 선거의 특징은 입장에 따라 전략이 뚜렷하게 갈린 것입니다.민자당은 「지역행정」을,야당은 「중간평가」를,무소속은 「세대교체」를 내세웠습니다.특히 무소속들의 약진이 눈에 띄었지요. -그것은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과 함께 이웃 일본의 도쿄(東京)도지사에서 무소속후보가 지사에 당선된 것이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으로 봅니다.같은 무소속이라도 서울은 세대교체를 주장했고,대구.경북이나 제주도는 다른 상황이었지요.대구. 경북지역은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TK정서」가 무소속바람의근원이었으니까요.
-텔리비전을 통한 후보자 토론회도 이번 선거의 특징중 하나입니다.과거 미국의 대통령후보들처럼 각 후보들이 자신의 정견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바야흐로 TV선거시대가 도래했다는 느낌입니다.후보들도 화장하고 옷차림에도 신경을 썼지요.그러다보니 일부 젊은 유권자들은 후보선택의 기준으로 『멋있잖아요』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미흡한 점도 적지 않았습니다.우선 후보들이 아직 토론문화에익숙하지 않아 자신들의 이야기만 발표하는 식이어서 진정한 토론이 되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말꼬리를 잡거나 전력을 들추고 인신비방등 공방이 계속됐습니다.
-지역에서도 사회단체나 언론기관에 의한 토론회가 많이 개최됐습니다.후보들도『참석자는 적었지만 자신을 제대로 알리는 확실한기회』라고 평가합니다.떠들고 구호를 외치는 방식은 이제 구시대적 방식이 돼버렸다는 것이지요.토론문화의 정착은 바람직한 경향이라고 봅니다.
-신문.방송이 정원식.조순.박찬종후보의 소위 「빅3」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기초단체장,특히 광역및 기초의원 후보들은 관심의영역에서 벗어나버렸습니다.시골 노인네들이 『누굴 찍어야 하나』고 고민한다는 얘기가 우스갯 소리가 아닐 정도였 으니까요.
-무소속은 이번 선거에서 서러움을 톡톡히 당했습니다.정당연설회를 통한 정치거물들의 지원유세도 없고,정당차원의 자금지원도 없고 오직 「맨입으로」뛸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다보니 갖가지 기발한 유세방식이 동원됐지요.무소속은 무엇보다 이름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잖습니까.이를위해 선거벽보에아예 상체를 벗고 나타나는가 하면 때밀기.세차.꽃편지보내기등을통한 유세방식도 선보였어요.
-날씨도 덥고 다들 출근하거나 논밭에 나가는 바람에 후보들이청중동원에 애를 먹었습니다.그래서 야간유세.찾아다니기 유세가 등장했지요.특히 무소속들은 『나도…』하는 식의 뻐꾸기 유세까지나왔습니다.
***흑색선전 여전 -이와함께 선거의 고질적 병폐인 흑색선전.인신비방이 사라지지 않은게 안타깝습니다.
-지방선거라는 특성때문에 각 시.도가 주체가 될 것이라던 예상은 크게 빗나간 점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민자당의 경우도시.도지부 중심으로 치르겠다는 당초의 방침을 포기하고 중앙당이선두에 서서 선거전을 지휘했습니다.
-후보들간에 아직도 공약(公約)아닌 공약(空約)남발도 여전했습니다.엄청난 재원을 중앙의 「빽」을 통해 끌어오겠다거나 초대규모의 공단을 유치한다는등 내용이 많았습니다.
-중앙선관위가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이 「공명선거」입니다.선관위는 이점에서 선거운동 기간중 통합선거법이 대체로 잘 지켜졌다고 보고있습니다.통합선거법을 전국적으로 적용하는 첫 선거였기 때문에 과연 선거법이 잘 지켜질지 우려하는 관계자 들이 많았던것도 사실이지요.이는 통합선거법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선거막바지가 되면서 일부 정당과 후보들이 돈봉투를 뿌린 사례가 적발돼 오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선거가 끝난뒤 통합선거법에 대한 문제가 다시 제기될 전망입니다.무엇보다 무소속에 불리한 조항이 많아 위헌시비까지 일고 있어요.예를들어 무소속후보들은 정당연설회같은 공식적인 지원채널이 없지요.또한 선거비용규정도 현실과 너무 동떨어 져 있어 어떤 후보는 『당선된 후보들치고 법정비용이상 쓰지않은 사람은 아마도 단 한명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어요.
-여하튼 이제 풀뿌리 민주주의의 씨앗은 뿌려진 셈입니다.첫숟갈부터 배부를 수는 없겠지요.다음선거에서는 이보다 더 나아질 것이고,그다음에는 더욱더 나아지겠지요.문제는 이번에 당선된 후보들이 과연 공약을 제대로 지키는지 유권자들은 눈 을 부릅뜨고지켜봐야될 것입니다.그리고 3년후에는 준열한 심판이 뒤따라야지요.그러면서 점차 민주주의의 뿌리는 굳게 뻗어나갈 것입니다.
〈지방선거특별취재팀.정리=朴鍾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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