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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터뷰] 김대환 노동부 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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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 9일 과천 장관집무실에서 만난 김대환(金大煥) 노동부 장관은 시험을 앞둔 학생처럼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는 말을 극히 아꼈고 민감한 현안에 대해선 신중한 자세로 일관했다.

지난해 5월 자신의 전임자인 권기홍(權奇洪)장관이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불법이라도 노조 측의 주장이 정당하면 들어주어야 한다"면서 거침없이 소신을 피력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11일로 취임 한달을 맞은 金장관을 임봉수 정책기획부 차장이 1시간30여분 동안 만나 비정규직.실업문제 등 노동 현안에 대한 의견을 자세히 들어 봤다. [편집자]

-민감한 노동 현안이 많은 시점에 장관이 됐다. 대통령이 어떤 임무를 맡겼다고 생각하나.

"대통령과는 같이 일도 하고 해서 (그의 의중을) 대략 짐작한다. 지금은 국가적으로 기존의 질서가 깨지고 새로운 질서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다. 노동문제는 새로운 질서의 가장 핵심이라고 본다. 험한 일을 맡겨도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해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나를 임명했다고 본다."

-대통령과의 인연은.

"오래됐다. 개인적으로 연락하거나, 밥이나 술 자리를 함께하는 사이는 아니다. 분규 현장과 공청회 등에서 공식적으로 만남을 이어 왔다. 대통령이 나를 소개할 때 '이제까지 (나와) 이심전심으로 이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라고 말한다."

-취임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시민단체와 학계에서 정부를 비판하다가 노동정책의 수장이 됐는데 이전과 생각이 달라진 게 있나.

"노동부를 밖에서 봤을 때는 노사관계 쪽만 보였다. 안에 들어와 보니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시장 정책을 많이 개발하고 있었다. 두 부문을 정책적으로 결합하는 방향을 생각하게 됐다. 밖에 있을 때부터 노동부 간부들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같이 일하는 직원들은 당시 내가 비판하면 모두들 욕했을 사람들이었겠지만(웃음). 비판 일변도에서 상황 인정으로 진화해 나가는 과정이랄까."

-취임 직후 "노동부는 근로자만을 위한 부처가 아니며 근로자와 기업 입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노동정책이 친(親)기업 쪽으로 기우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왜 자꾸 삐딱한 쪽으로만 해석하나. (그 말의 의미는) 교과서적인 것이다. 노동부가 노동자의 배타적인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한 것뿐이다."

-솔직히 노동부 장관은 경제장관인지 사회장관인지 경계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청와대에 들어가면 힘있는 부처에 말발이 밀리지 않나.

"어정쩡하지 않다. 나는 종합적으로 보는 장관이다. 경제와 사회를 다 아우르니 말이다. 내가 치우치는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부처 장관들도 모두 경청하는 편이다."

-민주노총 이수호(李秀浩)위원장과도 고교 동창이다. 그를 어떻게 평가하나. 취임 이후 사적으로 연락하나.

"이 질문은 꼭 나올 줄 알았다(폭소). 고등학교 때를 되돌아 보면 李위원장이 공식적인 쪽에서 일을 하고 내가 재야 쪽에서 일을 하는 게 맞다는 평을 누군가 하더라. 학교 때부터 잘 아는 사이였다. 공부는 내가 더 잘했지만 李위원장도 본받을 점이 많은 학생이었다. 취임 후에도 연락하고 지낸다. 다만 공무에 관해서는 핫(hot)라인이 아니라 쿨(cool)라인을 구축해 놓고 있다. 쿨라인이란 李위원장과 내가 모두 조직의 책임자라는 점에서 일에 관한 한 상황을 냉정하게 관찰한 후 연락을 취한다는 뜻이다."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참여는 올해 안에 가능할 것으로 보는가.

"(대답하기 곤란한 듯 시선을 돌리며) 그 문제도 쿨라인 상의 것이다. 다만 현실적인 흐름이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조심스럽게 낙관한다."

-올해 노사관계는 어떻게 보나.

"그런 거나 좀 물어보지. 언론이나 일부 여론조사에서 올 노사관계가 더 나빠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조심스럽지만 나는 좋아질 것으로 본다. 가장 큰 이유는 아직까지 체감을 못하지만 경기가 회복국면에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또 노사 양측이 과거의 극한적인 대립이나 일방적인 주장에서 조금씩 성숙된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기가 회복되면 노측의 눌려 있던 욕구가 폭발할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외환위기 회복 과정에서 그런 상황은 한번 거쳤다. 올해 노사는 서로 간에 자기 수위 조절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믿는다."

-올해 중요한 노사현안을 세가지만 든다면.

"비정규직, 노조의 정치참여 문제…(생각이 잘 안 나는 듯 노사정책국장을 쳐다보며) 또 한가지는 뭐지? 아! 일자리 창출 문제가 있구먼. 특히 비정규직 문제는 취약계층 보호라는 측면과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라는 측면이 맞부닥치는 난제다. 실업문제는 단순히 경기 사이클(주기) 문제가 아닌 구조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길게 본다면 우리 사회의 직업문화.직업관과도 맞물려 있다. 노조의 정치활동이 어떤 수준에서 우리 사회에 자리잡을 것인가도 지켜봐야 할 현안이다. 민노당이 국회에 진출하면 (우리나라 노조의 정치 활동 역사에)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본다."

-비정규직 문제가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노동계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철폐와 정규직 전환을 주장하는데.

"노동시장에서는 비정규직이 필요할 수도 있고 수요도 있다. 노동부 입장은 현실을 인정하되 차별이 너무 심할 경우 합리적으로 조정한다는 것이다."

-재계가 파업 사업장에 대체인력을 투입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는데.

"장관직을 맡기 전이라면 딱 하니 말하겠는데 지금은 노 코멘트다."

-그럼 노동계에서 주장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논리적으로는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적용하려면 굉장히 복잡하고 쉽지 않다는 생각이다. 같은 작업장, 같은 라인에서 작업을 한다 해도 반드시 동일노동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법에 명시하면 집행력을 담보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긴다."

-동일임금엔 반대한다는 뜻인가.

"……."

-노조가 정치자금 기부를 합법화해 달라고 주장하는데.

"노조의 정치참여는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지만 정치자금 기부는 법.제도의 틀 속에서 생각해야 한다. 노조의 정치자금 기부를 합법화하면 기업에도 동등한 기회를 줘야 한다는 뜻이다. 또 사업장에서 임단협 교섭과 정치활동이 섞여서는 안 된다고 본다."

-골프장 캐디나 보험설계사 등을 근로자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고용형태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직업을 근로자에 포함시킬 것인가를 획일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렵다. 노사정위원회에서 특수형태 근로 종사자에 대한 보호방안을 논의 중이기 때문에 그 결과에 따를 방침이다. 개인적으로 근로자 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는 특수형태 근로 종사자가 노동과정에서 어떤 위치에 있느냐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동과정을 스스로 조직하면 사용자가 될 것이고, 노동과정 속에 조직화된다면 근로자가 되는 것이 옳다."

-노동부가 일자리 수를 늘리는 데 지나치게 집착해 결과적으로 비정규직만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데.

"잘못된 해석이다. 정부 방안은 경제성장을 촉진시켜 150만개의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기업이 투자를 늘려 만드는 일자리라는 점에서 양질의 정규직도 많이 양산될 것이다. 물론 150만개에는 인턴십 등과 같은 '사회적 일자리'도 많지만 경제성장을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 과정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일자리 보도와 관련해 언론의 보도 태도에 불만이 많다. 일자리 하나가 어딘데 신문.방송들은 항상 '고작 그거?'라는 식이지 않나. 이 참에 긍정적인 보도 태도를 당부한다 (웃음)."

-노동부는 총선 이후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의 법제화에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난감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현재 이 방안에 대한 노사 양측의 시선은 상당히 싸늘한 게 사실이다. 노사 모두가 과실 하나를 놓고 주느냐 받느냐만을 따지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 있어도 불리한 것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노동부는 우선 양쪽의 이해관계가 일치되는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노사의 꾸준한 대화를 유도할 작정이다. 그런 다음 화합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법제화에 나설 생각이다."

-외국인 불법 체류자의 강제출국과 관련해 인권유린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겪는 고통이 크다고 본다. 하지만 불법 체류를 방치하기보다 법에 정해진 대로 정리하고 고용허가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이 외국인 근로자 문제를 해결하는 보다 바람직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법에 따라 엄정하게 단속하겠다."

정리=하현옥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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