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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과 공포’ 美에 부메랑으로 돌아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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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 16면

2006년 11월 이라크 팔루자 인근의 바하리아 캠프에서 미 해병대원이 저항세력의 공격으로 숨진 동료의 추도식에 참석, 그의 소총에 인식표를 달아 주고 있다. 이라크 전쟁은 5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부(負)의 유산이 되고 있다. 게티이미지 본사 특약

“5년? 이제 겨우 10분의 1 정도 지났을 뿐이다.” 범아랍 일간 알쿠드스 알아라비의 편집국장 압둘바리 아트완은 19일 혼돈 속의 이라크 정세를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의 이라크전 5주년을 맞아 한 전화 인터뷰에서다. “물리적 전쟁에서는 성공했지만 미국은 베트남 전쟁과 비교할 수 없는 심리적·정치적 타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라크전의 상처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50년 이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고립된 미국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지목한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9·11 테러 단체와 연관됐다는 이유로 2003년 3월 20일 감행한 이라크 전쟁. 만 5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됐다. 전쟁의 명분은 대부분 거짓으로 드러났고, 중동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이식하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있다.

9·11 테러에 대한 세계의 동정심은 일방주의 전쟁으로 중동에서, 유럽에서 반미 감정을 불렀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여론조사 기관인 해리스에 의뢰한 결과에 따르면 영국·독일·스페인 국민은 미국이 중국·이란·북한보다 세계 안정에 더 큰 위험을 가져온다고 여겼다. 이슬람 국가의 반응은 더하다.

이집트 등 이슬람권 5개국의 미국에 대한 호감도는 12~30%에 불과했다(퓨리서치센터 조사). 이라크 전쟁 전인 2002년의 23~75%와는 비교가 안 된다. 미국 내에서도 이라크전에 대한 비난 여론은 강하다. 유에스에이투데이와 갤럽의 최근 공동 조사에서 응답자의 60%가 철군에 찬성했다.

부시 대통령은 19일 전쟁 5주년 기념 연설에서 “전쟁의 목적과 명분이 정당했고 결과도 성공적이었다”고 했지만 국제사회의 시선은 싸늘하다. 1년 전의 미군 3만 명 증파로 테러는 줄고 있지만 치안은 여전히 불안하고, 종파 간 화합은 기대하기 어렵다. 현시점에서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냉전 이후의 패권을 국제사회에 강요한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없게 됐다.

전후 관리 실패
지난 17일 이라크 카르발라시에서는 여성이 자살 폭탄 공격을 감행해 30여 명이 숨졌다. 거의 매일 일어나는 저항 혹은 과격세력의 반미 공격의 한 예일 뿐이다. 지금까지 숨진 이라크 민간인 희생자는 15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세계보건기구). 전쟁으로 고향을 떠난 난민 수도 450만 명을 넘어섰다.

미군 사망자도 3983명으로 집계됐다. 부상자 수는 2만9000여 명에 이른다. 치안 부재는 미국의 아킬레스건이다. 바그다드 함락 직후 부임한 폴 브레머 당시 이라크 최고행정관은 치안 회복을 우선 과제로 선정했다. 2004년 말까지 무장 이라크 군경(軍警)을 60만 명까지 재건하는 계획을 발표했었다.

그러나 기한을 3년 이상 넘긴 현재 이라크 군경의 수는 40만 명을 밑돌고 있다. 장갑차를 비롯한 군사 장비는 물론 개인 보호 장비도 턱없이 모자란다. “다른 나라들의 이라크 진출을 막기 위해 미국이 의도적으로 안정화를 늦추고 있다”고 요르단대 전략연구소 무스타파 하마르나 교수는 지적한다. 치안 불안으로 경제 회복도 더디기만 하다. 이라크 정부는 실업률을 25∼50%로 잡고 있다. 매일 수많은 사람이 시리아·요르단 등으로 떠나는 이유다.

사실상 3등분된 이라크
“후세인 정권을 축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라크를 통합하는 데는 실패했다.” 두바이에 있는 걸프전략연구소 무스타파 알라니 소장의 분석이다. 그는 “군사적 승리는 쉽지만 정치적 승리는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라크는 현재 사실상 3등분돼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 의견이다.

극도의 친미 성향을 보이는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은 분리독립을 공공연히 외치고 있다. 공식 언어도 쿠르드어로 바꾸었고, 이라크 국기보다는 쿠르드 국기를 더 크게 내건다. 이라크의 두 번째 유전 지역인 키르쿠크의 소유권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외국 기업과의 유전 개발 계약을 승인하는 석유법이 다른 종파의 반대로 1년 이상 이라크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미 쿠르드 자치정부와 석유 개발 양해각서를 체결한 한국으로서는 난처한 입장이다.

쿠르드족의 독자적 노선에 대항해 이라크 남부 최대 유전 바스라 지역의 시아파도 분리독립을 언급하고 있다. 중부에 밀집해 있는 수니파는 이라크 안정화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수니파 출신 후세인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의 끈을 놓지 않고, 친미 시아파 정권에 대한 저항을 주도하고 있다.

석유와 권력을 둘러싼 이라크 내 종파와 민족 간 갈등은 이미 내전 단계에 들어서 있다. 대규모 폭력 사태는 대부분 이런 갈등 요인 때문이다. 이라크 안정화를 놓고 미국 내에서 ‘한국 모델’이 자주 언급됐지만 쑥 들어간 것도 이와 맞물려 있다. 일제로부터 해방시켜 준 미국 주도 연합군과 이라크 점령 다국적군에 대한 양 국민의 태도는 극과 극이다.


미군이 이라크에서 완전 철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공병·의료부대인 서희·제마부대가 주둔했던 남부 나시리야는 중동 내 미국의 최대 공군기지가 됐다. 자이툰 부대가 주둔 중인 아르빌, 쿠르드 지역의 석유 지대인 키르쿠크, 그리고 한국으로 치면 용산과 같은 바그다드 주변의 미군 기지는 오랫동안 유지될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를 이란과 마찬가지로 중동 내 전략적 거점으로 간주한다.

고용 인원 3000명에 이르는 세계 최대 미국 공관을 바그다드에 건설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이 석유의 공급처로서, 군수물자 등의 판매처로서 이라크를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 50년 이상 이라크가 중동의 불안정 요인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라크 시아파 정부의 미국 의존은 큰 정치적 부담이다. 중동의 반미 감정이 수그러들기까지는 상당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일부 친미 정권의 지지를 받을 수는 있지만 중동 내 여론은 끝까지 이라크 친미 정부를 물고 늘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전쟁 이후 반미 블록을 형성한 범이슬람권 과격세력의 활동도 확대되고 있다. 알카에다 조직은 없어졌지만, 이를 이념화한 알카에디즘(Al-Qaedaism)은 더욱 힘을 얻어 가고 있다.

이라크의 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를 벗어날 수 있는지는 결국 미국에 달렸다. 차기 대선에서 민주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미군의 완전 철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치안 안정의 명목으로 주요 미군 기지를 남겨 두더라도 다국적군의 철수 선언을 통해 점령을 공식적으로 종결하는 정치적 해결안이 제시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라크 군경의 신속한 재건을 통해 이라크 정부에 힘을 실어 줘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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