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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희의 SUCCESS인상학]下.지도자의 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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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통통 튀듯 걷고 참새가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다람쥐는 쪼르륵 달리고 토끼는 깡총 뛰어야 제격이다. 호랑이.사자 같은 맹수는 어슬렁거리며 걷는 게 어울린다. 호랑이나 사자의 걸음걸이만 봐도 동물의 왕이라는 것을 읽을 수 있다. 호랑이는 다람쥐 뒤를 쫓아다니지 않는다. 적어도 자기 덩치와 비슷한 상대를 만나야 으르렁댄다. 자신에게 도전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사람의 걸음걸이도 마찬가지다. 걸음걸이를 보면 그 사람 성격을 읽을 수 있다. 대통령의 걸음걸이를 보면 그가 아랫사람을 어떻게 다루는지가 보인다.

이승만 대통령은 호랑이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또 어깨와 팔을 함께 움직이며 걸었다. 자기에게 도전하고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은 가차없이 처단하는 성격을 나타낸다. 그가 방귀를 뀌면 각료들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는 일화처럼 그는 다른 사람의 도전을 용납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얌전해 보이지만 '누가 감히 나한테 도전해'라는 생각이 걸음걸이에 배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군인이 사열하듯 절도 있게 걸었다. 지프를 타고 다니면서 손을 흔들 때도 몸을 편하게 움직이는 게 아니라 각이 있게 움직였다. 군복을 벗으면 민간인다워야 하는데 그는 대통령이 되고서도 군인처럼 걸었다. 일 역시 하면 하고 말면 마는 성격. 지나치게 절도가 있어 맺고 끊는 게 너무 강했다. 그래서 절도 있는 걸음처럼 한 방에 간 건 아닐까.

전두환 대통령도 박씨처럼 군인 출신이긴 했지만 걸음걸이는 매우 부드러웠다. 절도 있기보다는 융통성이 있는 성격임을 읽을 수 있다. 군인일 때야 절도 있게 걸었을 테지만 민간인의 세상에 빨리 동화했던 것이다. 걸음만 봐서는 누구 위에 군림하는 성격은 아니다. 전씨는 어깨에 힘을 주거나 흐느적거리는 느낌이 없어 비록 아랫사람이라도 가까운 친지나 동기처럼 지내는 성격을 나타낸다. 하지만 걸을 때 턱을 치켜들었다. 그런 자세 역시 '천상천하유아독존'임을 내포하고 있다.

노태우 대통령은 '물태우'라는 별명처럼 걸을 때 팔을 흐느적거렸다. 긴 팔을 힘있게 뻗는 게 아니라 흔들흔들하며 마치 팔이 저절로 걷는 듯했다. 팔다리는 아랫사람 및 자기에게 도전하는 사람에 대한 행동 방향을 나타낸다. 흐느적대는 팔을 보니 아랫사람에게 힘도 못쓰거니와 마땅한 아랫사람도 없었을 듯하다.

YS는 체구는 크지 않지만 어깨부터 힘을 주고 팔을 양옆으로 들 듯 벌리고 걸었다. 자신을 치고 나오는 사람은 면전에서라도 못 봐주는 성격. 야당을 오래 했기에 망정이지 여당을 오래 했으면 많은 사람을 쳤을 기질이 걸음걸이에서 드러난다. 하나회를 없앴다거나 실명제.재벌개혁 등등의 일은 그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DJ가 대통령이 되기 전, 야당 생활을 오래 한 그가 대통령이 되면 많은 사람을 칠 거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사람이 상상한 것과 달리 보복하지 않고 보듬어 싸안고 갔다. 이는 팔을 휘젓지 않는 그의 걸음걸이와도 연결된다. DJ는 다리가 불편해 펭귄처럼 뒤뚱대며 걷는다. 다리는 말년을 나타낸다. 지팡이를 짚기는 해도 여전히 흔들흔들한 걸음.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아랫사람 탓에 피보고 망신당할 수 있는 상이다. 만약 일반인의 걸음걸이가 그렇다면 부하직원에게 하극상을 당할 수 있는 걸로 해석하면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깨를 흔들면서 껄렁껄렁하게 걷는다. 그러나 다행히 힘은 없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며 팔을 흔들어대는 것은 '나는 대단히 힘이 있으며 주변을 칠 것이다'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노대통령처럼 어깨만 흔들어대는 건 '내 기질은 치고 싶으나 사실은 그만한 힘이 없다'는 뜻이 된다.

북한의 지도자인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경우 뒷짐 지고 배를 쑥 내밀고 걷는 걸음걸이가 붕어빵처럼 같았다. 옛날엔 여성이 뒷짐을 지고 걸으면 자기 위에 아무도 없어서 남편도 우습게 보고, 있어도 없는 것과 같은 드센 과부상이라고 얘기했다. 이처럼 김일성 부자의 걸음걸이는 '나는 이미 군림하고 있다. 도전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너희가 나를 얼마나 잘 모시는지 관리 감독만 하겠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이처럼 걸음걸이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기업의 총수나 사장을 보라. 아무리 왜소해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다. 얼굴도 괜찮고 말씨도 좋은데 어깨나 다리에 힘이 없어 보이고 기가 빠진 느낌이 든다면 사장이 되기 어렵다. 확률적으로 대체로 그렇다는 얘기다. 어깨와 다리에서 에너지가 넘쳐나야 사람을 누르고 견제하는 능력이 있어 사장이 된다. 단, 머리에 든 것 없이 어깨에만 힘이 들어가면 깡패의 상이다.

가장 좋은 걸음걸이는 지성을 갖추었되, 너무 흔들거리지 않고 YS처럼 으스대지도 않으면서 힘있고 반듯하게 걷는 것이다. 몸이 날씬한 사람은 날렵하게 걷고 몸이 중후한 사람은 좀 묵직하게 걷는 게 바람직하다. 흔히 팔자를 바꾸려면 걸음걸이.말씨.음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옆 사람에게 밥이라도 사주며 "내 걸음걸이 어때?"하고 물어보자.

주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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