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초면 풀리는 경계심 … 댁의 자녀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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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양 초등학생 납치·살해 사건으로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학교나 학원 앞에는 아이를 픽업하려는 부모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초등학생 딸을 둔 장영덕(38·서울 노원구 월계동)씨는 “요즘 학원이 끝날 시간에 기다리다 데려오는데 늘 이럴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강병현(37·전남 순천시)씨도 “유치원에 다니는 다섯 살 아들에게 뭘 일러줘야 할지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유괴에 무방비=공원이나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를 낯선 사람이 유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미국 아동안전 전문가 케네스 우든의 실험에 따르면 35초밖에 걸리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든은 1995년 한 공원에서 젊은 엄마들에게 유괴 실험 협조를 요청했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우든이 데리고 있는 강아지에 관심을 보이며 35초도 안 돼 우든을 따라 공원을 나섰다. 엄마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국내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안양 사건 이후 KBS ‘추적 60분’이 전국 5개 도시 20여 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낯선 사람이 ‘엄마가 데리고 오라고 한다’ ‘재미있는 게임을 보여 주겠다’고 접근한 결과 절반이 넘는 아이들이 1~2분 사이에 처음 보는 차량에 올라탔다.

어린이들의 유괴나 실종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흔히 부모들이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그런 교육만으론 효과가 없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에게 구체적인 상황을 들어 행동 요령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낯선 할아버지가 길을 모른다며 함께 가서 알려 달라고 할 경우 ‘그 자리에서 길을 알려 주고 절대 따라가선 안 된다’고 교육해야 한다. 중앙대 김성천(아동복지학) 교수는 “아이들은 10분 전에 만난 사람도 아는 사람으로 여긴다”며 “아동기의 특성상 종합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므로 구체적인 상황을 가정해 대응 태도를 교육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착해 보이는 사람도 유괴범=보건복지부와 실종아동전문기관이 마련한 ‘유괴 방지 워크북’에 따르면 유괴범은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 없다. 험상궂을 수도, 인자하게 생길 수도, 남성일 수도, 여성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안양 사건의 피의자 정모(39)씨가 동네에 함께 살고 ‘착한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던 것처럼 오히려 아이들과 안면이 있거나 친절하며 선물도 주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워크북에선 유괴범이 ‘엄마가 아파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널 데려 오라고 한다’는 식으로 아이들의 감정을 자극하며 접근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이럴 때는 “가족·친지에게 먼저 물어볼게요”라며 따라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이름이나 부모의 이름을 아는 사람을 믿는 경향이 있다. 아이의 이름이나 전화번호는 잘 보이지 않도록 신발 안이나 옷 안, 가방 안 등에 적어 두는 게 좋다.

집에 혼자 있는 아이가 명심할 내용도 있다. 아이 혼자 집에 있을 때는 절대로 인터폰을 받지 말고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도록 당부한다. 실종·유괴 예방 워크북과 교육 동영상은 실종아동전문기관 홈페이지(www.missingchild.or.kr)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반복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실종아동전문기관 박은숙 부장은 “아이들은 평소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처음 본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해 주어야 한다는 교육을 받는 게 일반적”이라며 “유괴방지 교육은 그래서 지속적으로 실시해야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부모들이 독립심을 키운다고 아이들이 혼자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도 고쳐야 할 점으로 꼽혔다. 김성천 교수는 “한국의 부모들이 아이들을 과보호하면서도 정작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주고 있다”며 “어린이들에게 스스로가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알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기헌·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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