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6% 성장 집착, 더 큰 부작용만 불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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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경제정책 당국자들이 6% 성장률 목표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모습이다. 18일 청와대의 긴급 거시경제정책협의회는 환율상승 추세 자체에 대한 불만은 나타내지 않았다. 다만 상승이 너무 가파르다는 ‘속도조절용’ 구두 개입에 그쳤다. 환율이 올라야 수출에 도움이 되고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경제팀의 기본 인식이 엿보인다. ‘경제안정’(물가)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성장’(수출)을 우선하겠다는 의지가 작용한 것이다. 여기에는 6% 성장 공약을 지키지 못하면 정권 차원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정치적 판단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당국의 이런 의도가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점이다. 환투기 세력들은 정부의 손에 든 패를 환히 읽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그들은 원화 환율 상승 쪽에 자신 있게 베팅하는 분위기다. 이러니 전 세계의 달러 약세 속에서 원화 가치만 ‘나홀로 약세’를 보이는 이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새로운 실험을 하기에는 외부 경제환경도 좋지 않다. 미국의 주택·금융 위기가 심화되고, 국제 원자재 가격은 고공행진 중이다. 환율을 올리면 수출은 늘어나겠지만 투자 부진·내수 침체의 부작용을 각오해야 한다. 성장에 치우친 정책이 인플레 심리를 자극할 경우 물가가 치솟을 가능성도 크다.

지금은 정책당국부터 인식을 바꿔야 한다. 환율·금리 같은 큰 무기는 성장 쪽에 맞춰놓고 물가를 잡는다고 라면값이나 뒤쫓아 다니는 것은 쇼나 다름없다. 성장률 목표는 단지 목표에 지나지 않는다. 외부 경제환경이 어려운데 성장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다. 성장이냐 안정이냐를 놓고 본다면, 지금은 안정을 선택해야 할 시점이다. 진정으로 서민경제를 생각하면 인위적인 성장보다 물가 안정이 훨씬 도움이 된다. 어디를 둘러봐도 한국처럼 성장 목표에 매달리는 나라는 없다. 외부 환경이나 부작용을 감안하면 무모한 도박일 뿐이다. 세계 경제의 불안이 진정되고 난 뒤 성장 드라이브를 건다고 해도 결코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