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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희망 이야기] 9년째 장애인 돕기 노란조끼 아줌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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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충북 청주시 율량동 청주 꽃동네엔 여성 정신지체 장애우 18명이 오순도순 살고 있다.

이곳 식구들은 매주 수요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청주적십자 '청나봉사회' 회원들이 방문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지난 3일엔 봉사회 덕분에 인근 초정약수터로 목욕 나들이를 하고 돌아왔다. 이어 10일엔 특별한 하루를 보냈다. 회원 언니들의 지도 아래 떡볶이와 찐빵을 직접 만들어 먹은 것이다.

끓인 떡가래에 고추장과 고춧가루.물엿.양파 등을 넣어 졸이는 동안 조리대 주위는 침을 넘기다 못해 직접 맛을 보려는 이들의 젓가락 부딪는 소리가 웃음소리와 함께 난무했다. 찐빵은 소가 터져나온 것, 둥글지 않고 네모나거나 울퉁불퉁한 것 등 각양각색의 자유스런 모양으로 나왔다. 그래도 좋았다. 스스로의 손으로 빚어낸 찐빵을 먹으며 이들은 뭔가를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즐거워했다.

이날의 음식만들어 먹기는 청나봉사회 원종연(元終淵.47.여)씨가 마련한 '요리와 상담'프로그램의 하나다. 2002년부터 계속돼온 이 프로그램은 주는 음식을 받아먹기만 하던 장애우들의 생활태도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이들은 元씨로부터 밥짓기는 물론 만두.김밥.붕어빵 만드는 법을 배웠다.

元씨를 기다리는 곳은 여기뿐 아니다. 그는 정신지체장애우들의 특수학교인 청주 혜화학교를 비롯해 성심양로원, 은혜의 집, 아름마을 등 노인과 장애우 수용시설에서 노력봉사 중이다. 게다가 해마다 강원도.경상도 등 재해가 일어나는 현장이면 천리를 멀다 않고 달려간다. 10일 오후에는 폭설 피해를 본 청원군 미원면의 양계장에 일손을 보태는 등 그야말로 '무한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특히 그는 청주 혜화학교에서 정신지체 장애우들의 대모로 통한다. 1995년 아파트 주민 15명으로 처음 자원봉사 모임을 꾸려 활동을 시작한 그는 혜화학교 교장에게서 "우리 학생들 좀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의 일솜씨와 마음씨가 남다르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할 무렵이다. 그해 8월부터 회원들과 함께 혜화학교에서 정신지체 장애우들의 손발이 돼 식사수발은 물론 청소.상담 등에 정성을 쏟았다.

"봉사가 삶의 지표이자 신앙이 돼버렸어요. 외환위기 무렵 남편 회사가 부도를 내 힘들 때도 노란 조끼를 입고 봉사에 나서면 마음이 편해지곤 했습니다."

아들 하나는 군대 보내고 남편과 단 둘이 사는 그는 "'당신이 덕을 쌓고 다녀 일이 잘 된다'고 남편이 말할 때 큰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청주=안남영 기자, 사진=안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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