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남편 폭행으로 숨진 베트남 신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대전고법은 최근 외국인 아내를 폭행해 숨지게 한 40대 남성에게 징역 12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결혼과 부부생활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부부끼리의 대화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야만성에 대한 자책도 담았다. 우리는 이 사건이 외국인 여성을 물건 수입하듯이 신부로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의 인성 메마름과 미숙함에서 비롯됐다는 재판부의 분석에 공감한다. 세계적인 경제대국, 문화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무너져 내린다.

K씨(19)는 2006년 12월 베트남에서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27세 연상인 J씨와 당일 결혼하고, 지난해 5월 국내에서 부부생활을 시작했다. 남편과의 대화 부족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녀는 한 달 만에 고향으로 떠나려다 술에 취한 남편에게 마구 맞아 숨졌다고 한다. 남편은 사기결혼을 의심했다고 한다. 아내는 자신의 꿈과 어려움을 말해 보지도 못하고 저세상으로 갔다. 어린 신부가 사고 전날 남편에게 남긴 편지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가정을 만든다는 것이 여자에게 얼마나 큰 일인지 당신은 모르는 것 같다’ ‘행복한 대화를 통해 서로 의지할 것을 바랐지만 당신은 함부로 이혼을 말했다’ ‘대화할 사람은 당신뿐인데…’.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만들어 보겠다던 소박한 꿈은 남편의 무관심과 대화 부족으로 목숨과 함께 파탄이 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6년 1만5000여 건이던 국제결혼이 2006년에 5만여 건으로 증가했다. 국제결혼 비율도 12% 선을 넘어섰다. 이들은 이제 외국인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이다.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인간이다. 외국인이라고 차별하면서 우리가 외국으로부터 대접받기를 원하는가. 이들에 대한 한국어 교육, 문화와 풍습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절실하다. 그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는 자세가 먼저 있어야 한다. 한국 남편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부부 사이에 대화를 많이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