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서심층진단>1.정상인 환자 둔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교통사고나 폭행사건등의 증가자료로 경찰에 제출되는 병원 진단서를 둘러싸고 잡음이 그치지 않는다. 건강한 사람도 아프다고 호소하면 일정기간 치료가 요망된다는 진단서가 발급된다. 이 진단서는 경찰에서 사법적 판단의 근거가 되고 피해보상 산정의 기초가 된다. 경찰관이 브로커와 짜고 특정병원에 환자를 공급하고병원은 진단서를 남발하는"악어와 악어새"의 공생관계도 공공연하다. 중앙일보 취재팀은 경찰서에 진단서를 제출한 당사자들을 일일이 인터뷰하고 교통사고 환자를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병원에 환자를 가장해 입원,취재함으로써 진단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집중취재했다.

<편집자 주> 서울동대문구전농동 A병원은 교통사고 전문병원으로 유명하다.
특별히 진료를 잘하거나 고가(高價)의 의료기구를 갖추고있는 것도 아닌데 5층짜리 이 병원은 진단서를 떼거나 입원하려는 환자들로 항상 북적거린다.
24일 오후7시『접촉사고를 당해 목이 뻐근하다』며 병원을 찾아간 건강한 기자에게 원무과 실장 Y씨는 곧바로 진단기록서를 꺼내 능숙하게 영문으로 초진기록을 작성한뒤 기자를 촬영실로 데려가 자신이 직접 목.어깨등 네곳에 대해 X레이촬 영을 실시했다. 『당신이 의사나 X레이 기사가 아닌데 이래도 되느냐』는 질문에 Y실장은 『워낙 바빠 보여서…』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이틀뒤인 26일 다시 찾아간 기자에게 Y실장은『교통사고는 후유증이 심하니 바로 입원하는게 좋겠다』며 입원을 권유했다.
Y실장이 찍은 X레이에는 아무 증세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병원원장은 기자의 다리를 한번 만져보더니「경부염좌.좌측슬관절 염좌.요부좌상」이라는 2주짜리 진단서를 발급했다.이 병원의 치료의견은「특별한 합병증이 없으면 약2주간 가료를 요 하며 단 합병증.미발견증 발견시 추가진단 발급될수 있음」이었다.
『일단 입원한뒤 아프다고 말하면 얼마든지 기간을 늘려 추가진단을 받을수 있다』는게 병원측의 설명이다.
기자는 병원측이 발급한 2주짜리 진단으로 손쉽게 입원할수 있었고,입원당일 정형외과.성형외과를 주 진료과목으로 하는 이 병원의 총환자수는 기자를 포함해 69명이었다.
이 병원은 낮에는 병실마다 교통사고를 당한 입원환자들로 북적거려 다른 병원들과 다름없다.그러나 밤만되면 병원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진다.
환자들중 절반가량인 30여명은 오후가 되면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언제 아팠느냐」는듯 집으로 가버린다.병원 규정상 입원환자들이 외출하기 위해선「외출증」을 끊어야 하지만 그런 번거로운절차는 다 생략된다.
오후10시 남아있는 환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해 어떤 병실에선 고스톱과 포커판이 벌어지고 다른 병실에선 소주파티가 열렸고 새벽2시쯤에야「환자들」은 자기 병실로 돌아갔다.
이 병원환자 K씨(32.자유업)는 전치2주의 진단서를 발급받은뒤 4주째 입원치료중이다.
K씨는『오래 입원해 있어야 합의금을 많이 받을수 있다』고 말했다.5월중순 퇴원한 C씨(35)는 전치 4주 진단으로 10개월간 입원했다.
병원측은 입원비를 챙길수 있고 환자는 합의조건을 유리하게 끌어갈수 있기 때문에 장기입원은「누이좋고 매부좋은」일인 셈이다.
이 병원에는 경찰순찰차가 진단서를 끊으려는 환자들을 싣고 수시로 드나들었다.
이 병원에서 진단서를 발급받은 金모(18.서울영등포구신길4동)군은 『2㎞나 떨어진 제기동에서 추돌사고를 당했고 D병원,S종합병원등이 가까이 있었는데 경찰관이 무조건 이 병원으로 데려왔다』며『왜 그러느냐고 따지니까 경찰관이「가만히 있으면 우리가다알아서 해준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특별취재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