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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行長선임제 이대로 좋은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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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람이 살아가노라면 마음속에 각양각색의 앙금이 쌓인다.속담.
민담.전설등은 한 민족이 경험을 통해 얻은 온갖 정서의 침전물을 담고 있다.인간의 생활과 성격의 보편성과 공통성에 비춰 민족마다의 속담들이 비록 표현은 다르지만 내용은 대 체로 동일하다.예를들면 英美人들의「담장너머 남의 잔디가 더 푸르다」는 말은「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인다」는 한국속담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그러나「사촌이 땅 사면 배가 아프다」는 한국속담에 대응하는 서양식 표현은 발견하기 어렵다.하기 야「甲의 음식은 乙의 毒」이라는 유사한 속담이 있지만 친족간 질투심의 강도로서는 우리 것에 미치지 못한다.
성공에는 아비가 많아 탈이지만 실패는 아비없는 고아라던가.현행의 은행장선임제는 고아로 전락돼가고 있다.하기야 정부의 고위당국에서 일일이 낙점을 찍어주는 상황에서 벌어졌던 이권운동과 그 후유증의 폐습을 없애고자 구상한 것은 좋았으나 동일한 제도를 모든 은행에 획일적으로 적용하려는데 따르는 문제가 있다.2년여전 현행제도의 도입 타당성 검토시에도 그 부작용을 우려하는목소리가 높았었다.특히 경영권 이양이 순조로웠던 소수의 순수민간은행에 대해서도 제도운영의 신축성 없이 적용하는 경우 오히려은행장후보 추천위원회 구성에 참여하고자 하는 분산주주들의 결집화(즉 주식분산화의 역행),외부 영향력의 원격조정등 새로운 문제점이 지적됐다.과연「新경제」의 새로운 시도에도 불구하고 폐습은 계속되고 있다.
오늘날 은행장 선임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단임」이라는근거미상의 원칙이다.고질적 인사체증에 숨통을 트고 젊은 직원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기는 하다.그러나 재임시 업적의 공과(功過)를 불문하고 단임에 그치게 한 다면 은행장이곧 다가올 퇴임에 대비하려 딴전을 벌이게 되므로 경륜을 제대로펼 수 없고,부하직원의 통솔력에도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경쟁관계의 차석임원은 윗사람 환심 사기 또는 은밀한 흠집내기의 양자택일적 선택을 하게 된다.대통령직 도 단임인데 은행장직 쯤이야하는 그릇된 발상이다.
현행제도의 또하나 문제는 노동조합의 영향력이다.우리사주(社株)제도의 점진적 확대로 멀지 않은 장래에 노조가 은행의 대주주계층으로 부상해 영향력을 발휘할 날이 다가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에는 은행직원이 주주로서 입김을 미치는 것은 바람직하다.그러나 오늘날 은행장 선임과 관련해 전개되고 있는 일부 은행노조의 움직임은 은행장 후보자 어느 일방의 종용을 받은 것으로 볼수 있는 측면도 없지 않다고 한다.
이 무슨 부끄러운 모습인가.
금융자유화의 확대는 바람직한 국민경제의 과제다.중앙은행의 중립성도 보장돼야 하고 민간은행은 물론 국책은행의 경영자율성도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금융기관들의 자유화는 정부로부터,외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밖에서의 제도개선과 아울러 금융기관내부에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다져 정착시켜야 할 과제다.
중립성을 외치는 입 따로,안팎의 영향력을 이용해 자리운동하는몸 따로의 행동양식으론 존경받을 수 없다.내부경영자율을 주장하는 글쓰는 손 따로,정책자금대출관련 커미션 챙기는 손 따로의 방식을 관행으로 여기는 관리자들 아래에선 은행경 영 개선은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다.
행장선임을 둘러싸고 자중지난(自中之亂)을 벌이고 있는 민간은행임원에게 금융산업 효율성 제고를 기대할 수 없다.이미 고객들에게 돌아갈 금융혜택의 일부를 장기저리의 주택자금등으로 가로채고 있는 은행노조원들이 요즘에는 여성 3년,남성 3개월의 산후(産後)휴가를 단체협상 요구사항으로 주장하고 있다.
금융기관에 있어 국민의 믿음,즉 공신력(公信力)은 생명이다.
공신력을 축적하기 위해 자기자본의 충실성,자산운영의 건전성등 물질적 요건이 중요하다.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금융기관 임직원과 관련된 인적요건이다.이들의 몸가짐 하나,말 한마디는 바로공신력의 지표다.우리가 은행기관들에 대해 실망하는 바가 바로 이 대목이다.
물론 외부권력기관은 금융기관을 영향력행사의 도구로 간주하지 말아야 한다.더욱 중요한 것은 내부 잘못으로 외압을 스스로 불러들이지 말아야 한다.
〈西江大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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