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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경제] ‘스태그플레이션’ 왜 무서운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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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요즘 신문이나 방송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용어가 ‘스태그플레이션’이지요. 이는 경기 침체를 뜻하는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과 지속적인 물가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용어입니다. 어려운가요. 그렇다면 부모님이 늘 하시는 이런 불평을 떠올려 보면 보다 쉽습니다.

“호주머니 사정은 안 좋은데(경기 침체), 물가는 계속 뛰기만 하니(인플레이션) 못살겠네.”

이게 바로 스태그플레이션입니다. 이제 이 용어가 매스컴에 자주 나오는 이유를 추적해 보죠.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이후 경제학계의 주류를 형성했던 케인스학파는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날 수 없다고 생각했지요. 경기가 안 좋아지면 실업자가 많이 생겨 소비가 줄어들 겁니다. 소비가 줄면 물건 값도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 경기 침체 땐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없다고 본 것이죠. 그러나 1973년 10월 중동전쟁에 따른 1차 오일쇼크로 이 같은 믿음은 무너졌습니다. 미국을 예로 들어 볼까요. 오일쇼크로 국제 원유값이 급등하자 석유를 사용하는 각종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덩달아 올랐습니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죠. 게다가 석유값 급등으로 채산성이 나빠진 기업이 도산하자 실업자도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인플레이션 와중에 경기까지 나빠진 겁니다.

지금의 상황도 70년대와 비슷합니다. 지난 1년 새 국제 원유 가격은 두 배 이상으로 올랐습니다. 원유뿐 아니라 철·구리·아연과 같은 원자재, 밀·콩 등 곡물 가격까지 급등하고 있습니다. 중국·인도 등 신흥 경제 대국들의 수요가 많아졌는데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탓이죠. 게다가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한 투기자본까지 가세해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물가 상승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중국산 제품도 최근 몇 년 새 가격이 많이 올랐습니다.

좋지 않은 일은 꼬리를 물게 마련. 미국은 경기 침체를 우려해 2000년대 초부터 금리를 계속 낮췄습니다. 금리가 낮아지면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기업은 투자를, 개인은 소비를 늘리는 경향이 있지요.

그러나 지난해부터 이상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 문제입니다. 금융회사 입장에선 저금리가 꼭 반가운 소식만은 아닙니다. 돈을 빌려줘도 이자를 많이 받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많은 금융회사들이 꾀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돈 갚을 능력도 안 되는 사람에게 마구잡이로 주택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준 것이지요. 이런 사람에게 빌려준 돈이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입니다. 너도나도 집을 사니 당연히 집값도 천정부지로 올랐겠죠. 문제는 미국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 지나친 집값 상승과 그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금리가 올라가자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심지어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이가 많이 생겨났죠. 이로 인해 크고 작은 주택담보대출 전문업체가 도산했습니다. 심지어 씨티뱅크 등 세계적인 은행들도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됐죠. 그렇게 많던 시중 돈이 일순간에 싹 사라지게 된 겁니다. 은행에 돈줄이 마르자 기업들도 돈가뭄을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투자가 줄 수밖에 없다는 얘기죠. 소비도 줄고 있습니다. 빚 갚을 돈도 없으니 불필요한 물건은 사지 않는 겁니다. 바로 전형적인 경기 침체의 징후가 미국 경제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이죠. 결국 미국 경제는 79년 2차 오일쇼크 이후 거의 30년 만에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에 직면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떨까요.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비교적 순항해 왔습니다. 값싼 중국산 제품과 외국인 노동자 덕분에 물가도 안정됐었죠. 그러나 우리라고 국제 원유·원자재·곡물 가격의 급등에서 안전할 수는 없습니다.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는 더 취약하죠. 수입품의 물가가 급등하면서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0월 이후 2월까지 5개월 연속 3%를 넘었습니다. 위험 수준입니다. 새 정부가 내세운 최우선 정책이 ‘물가 안정’일 정도니까요. 아직 확실하게 본색을 드러낸 것은 아니지만 경기 침체 조짐도 나타나고 있답니다. 이대로 두면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게 분명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점점 많아지고 있지요.

그러면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가야 할까요. 경제학자들은 스태그플레이션을 두고 ‘치료가 불가능한 난치병’이라고 합니다. 금리를 낮추면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경기 침체를 막을 순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문제지요. 반대로 금리를 높이면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겠지만 경기는 더 나빠집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죠.  이쯤에서 “금리를 높이거나 낮추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나요”라고 질문하는 틴틴 친구가 있을 법도 합니다. 정답이라 할 수는 없지만 70년대 말 미국과 영국이 스태그플레이션을 치료하기 위해 썼던 방법이 반면교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당시 이들 나라는 금리를 높여 인플레이션을 먼저 잡았습니다. 그리고 경기 침체에 대처하기 위해 세금을 낮춰 돈 많은 이들이 소비를 늘리고, 기업들은 투자를 많이 하게 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이 정책은 성공했습니다. 틴틴 여러분이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오늘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죠.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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