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早期유학과 "나홀로 아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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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늘어나는 조기유학이 우리 사회의 가정 풍속도를 바꿔 놓고 있다.늦어도 중학교때 자녀들은 모두 외국으로 떠나고 집안에는 40대 초반의 젊은부부만이 달랑 남겨진다.유학간 아이들과 남편 사이를 탁구공처럼 왕복하는 아내 때문에 때아닌 홀 아비 생활을하는 아버지들도 드물지 않다.
「부모와 자식은 2세의 결혼을 계기로 분리된다」는 종래의 「핵가족분열의 제1법칙」이 근본적으로 깨지고 있는 것이다.
조기유학은 우리 사회가 「세계화」를 국민적 화두(話頭)로 삼은 이후 더욱 가파르게 늘어나는 추세다.강남의 고등학교에서 유행하는 「한학년 올라갈 때마다 한 학급씩 줄어든다」는 우스갯소리가 이를 실감케 한다.
교육열 높기로 장안에서 첫손 꼽히는 강남 모아파트에 사는 한선배는 『중3짜리 아들 친구의 절반정도가 조기유학을 떠났거나 준비중』이라는 믿지 못할 얘기를 들려줬다.부부만 남은 가정을 「양로원」이라 부른다는 말과 함께.
아직은 일부 고소득층의 일이라지만 최근 엄청난 私교육비와 입시지옥을 우려하는 보통사람들 사이에도 「차라리 유학 보내는 편이 낫다더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조기유학이 남의 일만이 아닌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이제 우리사회도 조기유학 문제를 가족관계의 관점에서 조명해 볼 때가 된 것이 아닐까.일찌감치 바다를 건너간 우리 2세들의 미래에만 신경을 곤두세울 것이 아니라 갑작스런 가족해체를 겪어야 하는 그 부모 세대에게도 진지하게 눈을 돌려보자는 얘기다.
바이올린 천재 소리를 듣던 고교생 딸을 3년전 모스크바로 유학보낸 한 아버지는 『출근길 차안에서 그애가 좋아하는 모차르트곡을 들으면 보고 싶은 마음에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고 말했다. 휴가도 없이 일해 자녀의 유학비용을 대는 요즘 아버지들은,논밭 팔아 자식을 서울로 올려보내던 지난 시대의 아버지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 자식들의 효도관은 하늘과 땅 차이다.부부사이의 모럴 역시 많이 달라졌다.대화의 유일한 소재였던 자녀가 떠난 이후 둘만의 공간과 시간을 요리하지 못해 새로운 갈등을 겪게 된부부들도 적지 않다.
이혼이 많은 미국에 「이혼의 매너集」이 있듯 이제 우리사회도「조기유학과 가족관계」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李 德 揆〈생활여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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