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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성은 누구인가 … 90년대 ‘괴력의 4번 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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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자살한 이호성(41)씨는 야구 명문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주장이었다. 평소 선후배를 잘 챙겨 “보스 기질이 있다”는 소리도 들었다. 개성이 강하기로 소문난 팀에서 김성한·이순철 등 선배와 이종범·홍현우 등 후배의 가교 역할을 맡아 해태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끌었다. 1983년 광주제일고에 다닐 땐 대통령배와 봉황기, 황금사자기 우승의 주역이었다. 연세대 시절에도 각종 대회에서 타격상을 수상했다. 89년 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의 우승 공로로 체육훈장 기린장도 받았다.

90년 해태에 입단한 그는 그해 타격 7위(0.304)에 올랐다. 이듬해 21홈런(5위)·25도루(4위)로 20-20 클럽에 가입했다. 입단 후 2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90년대 후반엔 팀의 4번타자로 활약했다. 팬들에겐 ‘엄지손가락으로 못을 박을 수 있는 괴력’을 가진 선수로 인기가 높았다.

해태는 이씨가 뛰던 12년간 4차례 우승했다. 이씨는 프로야구선수협의회 파동으로 주력 선수들이 퇴출을 당하자 협의회 재건에 발벗고 나섰다. 이때의 경험을 발판으로 2001년 송진우에 이어 제3대 협의회장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그해 시즌이 끝났을 때 구단으로부터 퇴출 통보를 받았다. 코치 제의를 뿌리치고 사업가로 변신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따 광주에 ‘호성 웨딩플라자’를 세웠다. 2003년 웨딩사업을 접은 뒤 가족들을 보증인으로 해 10억원을 빌려 순천에서 스크린 경마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부지 건물에 설정된 은행담보 35억원을 안고 들어갔다. 이씨의 한 동료는 “스크린 경마장을 짓는 데 100억원 정도 드는데 이씨가 자금이 넉넉하지 못해 처음부터 담보를 안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의 반발로 허가가 늦어지면서 빚 독촉에 시달렸다. 그는 다른 사람 명의로 된 상가의 건물주 행세를 하며 “임대분양권을 주겠다”고 속여 투자금을 끌어 모으다 2005년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두 달 후 보석으로 풀려난 뒤 재기를 도모했으나 빚을 갚지 못해 또다시 도피자 신세가 됐다. 2006년 광주를 떠난 이씨는 사기 등으로 총 7건이 기소중지된 상태였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부인과는 별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2005년 8월 발생한 조직폭력배 실종 사건 연루 의혹도 받고 있다.

 
강기헌 기자, 광주=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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