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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클을 열 번 넘게 하다니’ 안정환 투혼에 꽃피는 부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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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북과의 개막전에서 후배 한정화가 골을 넣자 기뻐하는 안정환. [사진=김진경 기자]

안정환(32·부산 아이파크)이 달라졌다. 지난해 수원 삼성에서 벤치와 2군을 오가며 고전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9일 전북과의 K-리그 개막전에서 안정환은 섀도 스트라이커로 풀타임 출장하면서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허정무 대표팀 감독의 지시로 안정환의 플레이를 지켜본 박태하 코치는 “팀에 보탬이 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좋았다”고 평했다.

안정환은 어지간해서는 유니폼에 흙을 묻히지 않는 선수였다. ‘개인 기량은 좋지만 팀을 위한 희생정신이 부족하다’는 혹평이 축구인들 사이에 잇따랐다. 그러나 이날 전북전에서 안정환은 들소처럼 그라운드를 누비며 동료들과 템포를 맞췄다. 후배들 이상으로 뛰며 몸을 사리지 않고 태클을 걸기도 했고 또 수시로 당하기도 했다.

1998년 안정환과 함께 부산에 입단한 뒤 8년 만에 다시 한솥밥을 먹게 된 아이파크의 주장 이정효는 “정환이가 열 번도 넘게 태클을 했다”며 “예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플레이죠”라며 껄껄 웃었다.

전반 30분 안정환은 아크 정면에서 파울을 유도해 프리킥 찬스를 얻어냈다. 직접프리킥 슈팅으로 골을 넣기에 딱 좋은 자리였다. 팬들의 시선이 안정환의 발 끝에 쏠렸지만 슈팅을 때린 건 새까만 후배 김승현이었다. 크로스바를 맞힌 김승현의 슈팅도 좋았지만 득점 기회를 선선히 후배에게 양보한 안정환의 모습이 신선했다. 골도, 어시스트도 기록하지 못했지만 그는 경기 후 “내가 뛴 프로 경기 중 최고였다”며 활짝 웃었다.

‘왕자님’이 ‘마당쇠’로 변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후 안정환은 유럽에서 뛰겠다는 자존심만 내세우다 무적(無籍) 신세로 전락했다.

6개월 쉬는 동안 허벅지에는 군살이 붙었다. 지난해 스타 군단 수원에 입단하며 K-리그에 복귀했지만 풀타임 출전은 고작 다섯 번, 그것도 모두 정규리그에 비해 중요성이 떨어지는 컵대회였다. 2군 리그에서 뛰다가 상대팀 서포터스의 조롱을 받다가 이들과 충돌하는 불상사를 빚기도 했다. 안정환은 대폭 연봉 삭감을 통보한 수원을 미련없이 떠났다. 2002 한·일 월드컵의 영광을 함께 일궜던 ‘선홍이형’이 있는 부산으로의 복귀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스트라이커 출신 황선홍 부산 감독은 안정환을 되살릴 노하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실전만큼 정환이에게 필요한 것은 없다. 처음부터 90분을 모두 뛰게 할 생각이었지만 심리적 안정을 위해 언론에는 일부러 말을 아꼈다. 아직은 80% 정도지만 초심만 유지한다면 점점 더 나아질 것”이라고 황 감독은 말했다. 충분히 기회를 주면서 정신적인 부분까지 배려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활약이 계속된다면 대표팀 복귀도 멀지 않아 보인다. 허정무 감독이 박태하 코치를 부산에 보낸 것도 안정환을 살펴보려는 의도였다.

안정환에게 따뜻한 봄날이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다.

글=이해준 기자, 사진=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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