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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기업을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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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공동체 기업을 많이 만드는 것이 우리 경제와 사회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사람에게 공동체는 필수적이다. 공동체 속에서 사람들은 생계수단과 어려울 때 도움을 얻으며, 생의 보람과 기쁨을 함께 나눌 벗들을 찾을 수 있다. 공동체 없이 살기에 개인은 너무 약하고 이 세상은 너무 험하고 외롭다. 과거에 공동체 역할을 담당하였던 대가족이나 마을이 모두 사라진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가정과 국가에만 소속되어 살고 있다. 공동체 역할을 하기에 가정은 너무 작고 국가는 너무 크다. 종교단체나 취미단체가 공동체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도 없고 이를 통해 생활을 해결할 수도 없다. 사람들이 공동체에 속하지 못하고 바닷가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무수한 대중 속에 매몰되어 있으면서도 아무하고도 소통하지 못하는 고립된 개인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 인간성이 황폐해지고 있는 직접적 이유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동체에 적합한 조직은 기업이다.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우리나라에서 정상적인 기업들은 대개 공동체 역할을 담당하였다. 대개 평생직장이었고 퇴직한 직원들도 배려하였다.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비슷하였다. 이들 나라에서도 1970년대까지는 대량해고와 초고액 봉급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은 것이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 유행 덕분에 대량해고와 초고액 연봉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일이 된 반면에 공동체 기업은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현재처럼 회사들은 사람을 단지 돈 버는 수단으로만 취급하고 사람들도 돈밖에 모르는 세상에서 어찌 숭례문이 불타지 않을 수 있을까? 숭례문을 불태운 것은 돈과 자기밖에 모르는 우리 국민 모두가 아닐까? 이런 세태가 바뀌지 않는 한 소외된 사람들의 불만은 또 다른 숭례문을 불태울 것이다.

정년 보장이 공동체 기업의 기본 임무다. 요즘처럼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정년 보장은 단기적으로 비용을 높이고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정년 보장은 생산성 향상의 필수조건인 노사화합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생산성을 높일 것이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협조를 바랄 수 있을까?

사람은 감정도, 자존심도, 머리도 있는 존재다. 사람에게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노력을 끌어내려면 당근과 채찍만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신뢰와 애정을 이끌어내는 설득 효과가 있어야 한다. 최소한 인격을 존중하고 정년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강아지도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주인을 사랑하고 믿고 따른다. 우리나라 봉급쟁이들은 강아지만도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

정년이 보장되면 대부분의 직원이 요령을 피우지 않고 회사에 애정과 신뢰를 갖고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게 될 것이다. 대부분이 열심히 일하는 곳에서 혼자 요령을 피우는 것은, 대부분이 요령을 피우는 곳에서 혼자 열심히 일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남들이 안 하면 자기도 안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민간기업은 정부부문과 달리 경쟁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방만하게 운영되지 않으므로 공동체 역할을 한다고 소비자들에게 큰 피해를 전가하는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모든 기업이 공동체 기업이 될 수는 없겠지만, 공동체 기업을 만드는 것이 이 시대 큰 부자들의 첫 번째 노블레스 오블리주일 것이다. 아무리 경제가 성장한들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사람들이 염치를 모르고 자기와 돈밖에 관심이 없는 지금의 천민자본주의가 계속된다면 그게 무슨 발전인가?

이근식 경실련 공동대표, 서울시립대 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