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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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를 데 없이 구체적이다.
이런 자연석이 정말 있을까 싶도록 흡사 조각품이다.
모으기도 어지간히 모았다.크고 작은 남근석이 신사 뜨락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다.
귀두(龜頭)에 금줄을 맨 큼직한 돌도 있다.특별히 신성시(神聖視)되고 있는 남근석인가.
하늘을 향해 모두들 힘껏 치솟아 있는 품이 가상하다.
신사 맨 안쪽 으슥한 곳에는 한개의 거대한 여음석(女陰石)을모셔 놓았다.이것 역시 리얼한 생김새의 넓적 바위다.
하나의 여음석을 모시기 위해 수백개의 남근석이 줄지어 서 있는 셈이다.
이 찬란한 원초의 도식(圖式).
여성은 어쩌다 이같은 태양의 자리에서 시녀의 바닥으로 전락해왔는가.길례로서는 그것이 못내 궁금하다.
원시 모권사회는 개인의 재산이 형성되면서 부권사회로 이동했다한다. 재산은 전쟁을 부른다.따라서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을 원천적으로 내재(內在)하고 있는 것이 부권사회다.부권사회에 싸움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인가.
아스카(飛鳥)엔 목 잘린 시신을 묻은 고분이 있다.고대의 권력 투쟁이 어떠했는지를 생생히 증언해주는 무덤이다.
다가마쓰즈카(高松塚).7세기 말엽께 축조됐다는 아름다운 벽화고분이다.
특히 궁녀복 차림의 여인 군상은 살아 숨쉬듯 발랄하다.기장 긴 저고리와 색동 주름치마,치맛자락에 정성들여 잡은 장식 프릴….고구려 고분 벽화의 여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목이 잘린 채 묻힌 무덤의 주인공은 대체 누구일까.
고구려 벽화고분은 수두룩하다.그러나 일본서 발견된 벽화고분은다가마쓰즈카가 처음이다.
이 무덤의 피장자도 고구려계 인물이 아닐까.
어떤 일본학자는 천무(天武)천황일 것이라 한다.
천무는 고구려 멸망에 앞서 왜로 망명,67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고구려계 장군으로 보여지고 있다.
친신라(親新羅)파인 반면 철저한 반당파(反唐派)였다.친당(親唐)으로 돌아선 아들의 손에 죽은 비극의 임금이기도 하다.
『타임 머신을 타고 삼국시대로 돌아간 기분이야.』 아스카 마을 한가운데 있는 작은 언덕 아마가시노오카(甘岡)를 오르며 남편이 말했다.실감났다.아스카는 일본이라기보다 고대한국 바로 그것이다. 언덕에선 아스카(飛鳥)川이 흐르는 좌청룡(左靑龍)우백호(右白虎)의 전형적 명당 지형이 한눈 아래 내려다 보였다.명당 좋아한 우리 조상이 여길 도읍으로 삼은 까닭을 알만했다.
『이 언덕에서 희한한 재판을 했대.』 남편이 메모지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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