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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自 "울산만 작전" 어떻게 이뤄졌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울산만작전」으로 명명된 현대자동차 공권력 투입은 과거와 달리 10개중대 1천여명의 최소병력만으로 작전개시 20여분만에 농성자 3백여명을 전원연행한 「초스피드작전」이었다는 점과 철통보안속에서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초극비작전」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끌고 있다.
지금까지 노사분규현장에는 대규모병력을 동원하는 것이 관례였다.3만여조합원이 있는 현대자동차 분규의 경우 과거엔 매번 1백여개중대 1만여명의 병력을 동원했으며 작전시기가 본의아니게 사전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경찰이 의도적으로 작전시기를 사전 언론에 흘려 회사내 농성중인 조합원들이 공권력투입시기를 미리알고 회사밖으로 도주토록해 작전수행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심리전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번 울산만작전은 회사관계자들조차 공권력이 투입된후에작전개시를 알았을 정도로 철통보안속에서 이루어졌다.
마치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진 울산만작전은▲18일오후9시 분신대책위 주도로 3천명의 근로자들이 梁씨 회생기원집회를 시작하고▲오후10시 정해수(鄭海秀)경남경찰청장이 창원에서 울산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이어 ▲오후10시30분 梁씨 회생기원집회가 끝나고 근로자들이귀가를 시작하자▲오후11시 보안상 鄭청장주재로 울산시내 안가에서 작전회의가 열렸다▲19일오전1시30분 각종상황의 종합판단끝에 작전시간을 오전4시로 결정했고▲오전2시 염포 삼거리.효문네거리등에 전진배치된 경찰병력에 작전명령이 하달되었으며 ▲오전4시 10개중대 병력이 정문.명촌후문등 3개방면에서 진입해 ▲오전4시20분 농성자 3백여명 연행완료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정확한 정보입수와 오차없는 작전타이밍 포착등으로 자칫 대형분규로 이어질뻔 했던 사태를 조기에 일단락지었다는 점에서 이번작전의 성공은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蔚山=金相軫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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