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 기자의 뒤적뒤적]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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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호 25면

『20대, 똑똑한 사회생활 스타트』, 이런 제목의 책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 어쩌면 ‘오래 살면 장수한다’ 같은 하나 마나 한 소리가 담겼으리란 짐작이 들기 십상이다. 맞다. 제목으로 반쯤 먹고 들어가는 실용서치고는 참으로 얌전한 제목이다.

그런데도 이 책(빌 버나드 지음, 중앙북스)을 손에 들었다. 새 정부의 조각(組閣)을 둘러싼 한심스러운 작태 탓이다. 부아가 나다가 ‘뭐하고 살았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심사가 편치 않던 차에 책의 원제 ‘인생은 공정하지 않다(Life Is Not Fair)’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너는 얼마나 잘났기에…” 하는 마음이 작용했으리라.

읽어갈수록 이 책, 마음에 쏙 들었다. 교과서 같은 교훈도, 이악스러운 잔머리 굴리기도 아니다. 추상적이고 큰 원칙인데도 묘하게 상당히 쓸모 있는 지침을 담았다. 미국에서 케이블TV 쇼핑채널을 운영한다는 지은이가 20대의 출발점에 선 젊은이들에게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삶의 교훈을 진솔하게 설명한다. ‘배의 크기보다 물결의 흐름이 중요하다(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법)’ 등 10개의 가르침은 쉽고 선명하며 정곡을 찌른다. 그야말로 진정한 실용주의다.

‘공짜 점심은 없다’ 편에 나온 이야기다. 세상의 기본 규칙은 ‘불공정’이며 사회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의 보편적인 ‘공정하지 않음’을 이해하는 것이란다. 맞다. 재산·재능 등 거의 모든 것이 사람마다 다르다. 법률·조세·국제조약도 처음부터 어느 한쪽에 유리하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은가. 이런 냉정한 현실을 일깨워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지은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어차피 세상은 그러니 남보다 부족하게 받았다고,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고 불평하느라 일생을 허비하지 말란다.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부모와 세상에 빚을 졌다 여기란다.

좀 더 일찍 만났으면 싶었던 가르침은 또 있다. 훌륭한 연장을 잘못 쓸 때보다 나쁜 연장을 제대로 쓸 때 훌륭한 작품이 나온다는 지적이 그렇다. 지은이는 “사람들은 누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에 관심을 갖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일러준다.

젊은이를 위한 것이지만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다. 뭐, 적어도 이번 조각 파동을 보면서 쓰라린 속을 달래고 화를 가라앉힐 수도 있을 테니. 축구에서 오프사이드가 맞다, 아니다를 따질 수는 있지만 오프사이드 규칙 자체에 시비를 거는 ‘선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 모두는 세상이란 그라운드의 ‘선수’들 아닌가.

하지만 투기와 표절로 부와 사회적 지위를 일구고도 벼슬까지 챙기려는 이들에 관해 ‘일말의’ 이해를 하는 데만 쓰기엔 이 책, 너무 아깝다. 단순한 자기계발서를 넘어선다. 병역 면제나 미국 국적을 선물할 수 없다면, 교문을 나서는 자식들에게 꼭 권할 만하다. 혹 아는가. 이 책의 가르침을 실천한 덕에 손자 대에선 ‘자연의 일부’를 사랑하는 이가 나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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