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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외인구단이 바꾸는 여의도 구태정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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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의멸친(大義滅親).

‘공포의 외인구단’이 여의도 정치를 뒤흔들고 있다. 외인구단은 박재승(69) 위원장이 이끄는 민주당 공천심사위원 12명 가운데 외부인사 7명을 이른다. 이들은 계백장군의 대의멸친 정신을 뚝심 있게 밀어붙여 구태 정치권엔 공포를, 일반 시민에겐 시원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대의멸친 공천은 ‘일절 정치적 고려 없이 오직 국민 눈높이로만 공천의 칼을 휘두르자’는 정신이다.

‘국민 눈높이’ 개념은 “서민이 우유 한 봉지 훔치면 징역 살고 정치인은 수억원 정치자금 받아 사면만 받으면 국회의원 나갈 수 있는 거냐”는 박 위원장의 말에서 나왔다.

경북 안동에서 ‘시골 의사’를 하고 있는 박경철(42) 공심위 대변인은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이란 책으로 유명하다. 일상에서 읽어낸 시민의 힘으로 여의도 정치인들과 담대하게 맞서고 있다.

작고한 신동엽 시인의 부인인 인병선(75)씨, 재야 사학자 이이화(71)씨, 광복군의 아들로 음향기기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장병화(60)씨, 정해구(53) 성공회대 교수, 김근(66) 전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도 외인구단의 일원이다. 이들이 스크럼 짜듯 똘똘 뭉쳐 박 위원장을 보호했기에 국민 감동 공천이 가능했다.

민주당 외인구단의 공천 드라마는 전략적으로 볼 때 두 가지 점에서 한나라당을 앞섰다. 민주당 공심위는 처음부터 당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국회의원 적격 여부’만 가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일의 성격이 단순해졌다. 애매모호한 정치성이 개입할 여지가 적었다. 안강민 위원장의 한나라당 공심위가 국민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은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당선 가능성을 주요 기준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민주당 공심위가 곧바로 ‘거물 문제’에 승부수를 띄운 것도 주효했다. 거물 문제를 처리한 공심위는 탄력을 얻었다. 호남 물갈이 폭을 30%에서 50% 이상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민적 지지를 받게 됐다. 반면 한나라당은 당 최대 기득권 지역인 ‘영남 물갈이 문제’를 뒤로 미루면서 개혁 공천의 추진력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한나라당 공심위엔 개혁 대신 계파안배 정신이 흐르고 있다.